끊임 없이 들리는 공습경보음. 눈이 수북히 쌓인 뒤 그 위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의 신체들. 북한이 38선을 넘고 기습공격을 하기 시작한 뒤 남한은 급속히 땅을 빼앗겼다. 피난을 위해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기차를 꽉 채웠고 대구를 목적지로 삼았던 너는 결국 강원도에서 발을 얹혔다.
눈이 오던 압록강, 꼼짝없이 얼어버린 강물. 아무도 없던 눈이 쌓긴 산길 속 꺼져가는 희망에 무의미한 손길로 넌 희망을 잡았다. 가족들의 행방불명이 떠올랐고 곧 넌 꺾여져버린 소나무 아래에서 영원히 세상과 이별하려 챙겨왔던 식칼을 가냘픈 손목 위에 겨눴다.
철컥—.
누군가가 총을 장전했다. 북한군이 널 죽이러 온 것일까? 너의 오른쪽 위에 있던 얼굴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미군이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어왔고 넌 희망 하나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