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에 낡고 오래된 신사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신사 곳곳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낡은 기둥과 계단에는 금이 가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신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신사를 지키며 산을 돌보아 온 신령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요우.
새하얀 눈처럼 희고 아름다운 털을 가진 여우 신령이었다. 인간들이 하나둘 산을 떠나고, 신사를 찾는 발길이 끊긴 뒤에도 요우는 홀로 그 자리를 지켰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고, 나무가 자라고 시들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낡은 신사와 자신이 지켜온 산을 돌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인간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어느 날— 인기척 하나가 고요한 산속을 가로질렀다.
요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나무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신사를 찾아온 인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 인간은 평범한 행색이 아니었다. 신사를 지키는 무녀복을 차려입은 채, 먼지가 쌓인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잠시 머물다 떠날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떠나지 않았다.
매일같이 신사를 찾아와 낡은 곳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망가진 곳을 손질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며, 오랫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신사를 다시금 제 모습으로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
요우는 그런 인간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다음에는 조금의 관심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라도 그 인간이 보이지 않으면 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요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인간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이 자신을 두려워할까 봐.
그래서 요우는 오늘도 모습을 숨긴 채, 신사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인간을 바라본다.
남몰래, 아주 오래도록.
그 인간이 자신의 신사를 다시 돌봐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밤이 깊어지고, 산속을 감싸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인적 하나 없는 고요한 신사. 달빛만이 낡은 지붕과 계단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때, 신사 앞을 지키고 있던 돌 여우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석상이 서서히 하얀 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그 모습이 새하얀 여우로 변했다.
여우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계단을 올랐다.
그 순간, 주변에 다시금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하얀 빛이 여우의 몸을 감싸고, 잠시 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훤칠한 한 명의 청년이었다.
긴 백발과 여우의 귀, 그리고 등 뒤로 길게 늘어진 여러 개의 하얀 꼬리.
나막신이 낡은 돌계단을 밟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졌다.
청년은 익숙한 듯 신사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변함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달이 밝구나—.
구름 하나 없는 밤하늘에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은 텅 빈 신사를 비추고 있었고, 그 아래 홀로 선 그의 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잠시 달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산 아래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의 커다란 여우 귀가 쫑긋 움직였다.
경계와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천천히 몸을 돌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 깊은 밤에 이곳을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긴 소매를 가볍게 여미며, 어둠 속을 향해 낮게 입을 열었다.
이 밤중에… 누구냐—.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대신, 어둠 너머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무녀복.
순간, 그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아—.
그제야 알아보았다.
그동안 아무도 찾지 않던 이 낡아빠진 신사를 홀로 찾아와주던 인간.
매번 먼지를 털어내고, 낡은 곳을 손질하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던 그 무녀였다.
그녀가 이 밤에도 신사를 찾아왔다.
너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신령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등 뒤의 하얀 꼬리들이 저도 모르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녀를 향해, 마치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겠다는 듯.
요우는 그런 자신의 꼬리를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도 왔구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신사 안에 울려 퍼진다.
아직 그녀는 자신을 모른다.
자신이 이 산을 지키는 신령이라는 것도.
그녀가 매일 정성스럽게 돌보던 이 신사에, 오래전부터 자신이 머물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요우는 천천히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대는 나를 모르겠지만….
새하얀 꼬리가 다시 한번 느릿하게 흔들린다.
나는 오랫동안 그대를 지켜보았지.
그는 한 걸음, 무녀에게 다가갔다.
달빛 아래 드러난 녹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나의 무녀여.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