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 걸음질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비탈, 한 번 두 번 쉬어가다 고개 들면 다닥다닥 붙은 벽돌집 검댕 묻은 콘크리트 외벽 슬레이트 지붕 나부끼는 빨래가 하늘마저 가리고 빽빽한 단칸방 사이 굽어진 길 아직 한참 더 올라야 저희 집. 고생고생하며 도착하면 마중 오는 건 구 할 정적 남은 일 할은 차라리 안 오는 편이 좋소 가느다런한 팔다리는 여편네 바가지 긁는 소리에 분풀이 필요한 바깥양반 막기엔 이르고 고사리 같은 손은 제 누덕한 인생 떠넘길 제웅 필요한 안사람 막기에도 이르니 보다 못한 삼이웃도 혀 차며 이르길 만만한 게 죄지, 뭐. 복날 개 잡듯 잡으면서도 밥 축내는 꼴은 눈꼴이 시려 머리 좀 크자마자 먹이고 입히고 키워주는데 돈 한 푼 벌어다 주지도 않는 호레자식이라 어찌 그리 닦달을 하는지. 친구들 책상에 앉아 따각따각 선생 백묵 소리 들을 때에 공부는 뒷전, 해 뜨기도 전 잉크 덜 마른 신문 끼고 동네 돌고, 호객에 짱깨집에 약장수 좌판 바람잡이에.... 오늘 하루도 눈 떴으니 살아가는 처지. 다른 내일 기대라도 해 보라는 말은, 악의 없어도 바득바득 긁어 대는 것 같아 듣기가 싫어. 그래도 인간은 겨자씨만 한 일 하나에 오락가락 희로애락 오가, 짱깨집 브라운관 테레비서 십여 년도 더 지난 4전 5기의 신화니 타이틀 매치니 하는 것 훔쳐보다 손찌검 당하는 데 돈도 벌고 인생 뜯어고칠 수 있다는 욕심이 살랑살랑 헛바람 불어넣어 당장 먹을 것도 없는 놈이 남은 돈 박박 긁어모아 체육관 문 앞 한참 얼쩡거리다 결국 들어섰는데 과연 돈 보고 시작한 일인가. 제 것 하나 가져본 적 없는 놈 손에 처음으로 들어온 게 순수한 理想 빛나는 별이라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 모두 보상받고도 남아 빛에 눈이 멀어 저도 결국 凡人으로 끝나는 결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리 열정 하나 들고 링 위서 죽어도 좋다 헛소리 지껄이며 살다 막바지 남은 건 헛되지 않았다 속삭이는 상패 메달 트로피 정말 그런가 뒤에서 머리채 끌어잡는 의심 불안 병약한 정신의 심화. 앙상한 토양에 뿌려진 씨는 애초 발아부터 뒤틀림, 혹은 그조차 실패하였을 수도 있으나 이는 비가시적이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 두개골에 누적된 충격은 이미 병든 면을 부추겨 건장한 외피 아래 내피는 옛적의 결핍에 병리의 흔적이 갉아먹어 구멍투성이. 망상의 탈을 쓴 꿈은 사라지지 않고 출구도 없어, 무명도 좋다 계속할 수 있으면 된다 거뭇줄같은 희망 품고 손에 잡히는 일이면 뭐든지 해 튼튼한 몸뚱이로 세멘 나르고 구루마 밀고 구사대 맡고, 용역 서고. 울분 사이 날아오는 건 오물이면 선방 주먹 오가는 건 필연. 난투극 속 멍한 머리엔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도 문득, 저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사람이나 잡으려 그리 열심히 살았는지. 석 달 일하고 받은 건 천만 원 남짓, 그 시절 임금치곤 넘치고 소중한 것 팔아먹은 값 치곤 싸더라. 오래 주려 허꺼리 시달리는 놈이 돈맛 들이면 헤어나질 못하니 결국 떨어질 대로 떨어졌구나. 바꿔먹고 남은 꿈 부스러기만 든 채 링 오르는 게 비참해 그만둔 지 오래. 영예의 상징물은 버리지도 못해, 간간이 드는 잡지는 눈 닿는 곳 정해져 있고. 거리에 체육관 간판 보이면 문득 서 버리는, 놓아주는 것마저 실패한 머저리. 동네 밀린 건 한참 전, 지금은 일부 남기고 반짝반짝 새 건물 들어섰지만 사람은 싹 밀고 새로 올릴 수가 없으니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진 가정에 매여 백날 담배나 뻑뻑...
건장한 체구에 입은 드물게 여니 썩 만만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다. 다만 자아가 부재한 수준의 자존감인 터라 불이익 당한 적도 여러 번. 상명하복 체계에 익숙한 것도 그 이유. 불안정한 보호 아래의 성장으로 저는 모르지만 언제 내팽겨치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기본. 거듭 반복된 실패는 잘못된 가정 검증하는 데에 일조하였으니 방어심리적인 모습이 없지 않아 있다. 거기에 더해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보호의 욕구까지 결합된 것. 현재는 노가다판만 전전 중이요 용역 뛰었던 일은 제 인생 최대 오점 추락 시작점이니 십여년 전 천만 원에 대가 달라 한 놈도 없는데 혼자 치루고 있는 셈. 아직도 —하지 않았다면 가정만 곱씹으며 살고 있다.
늦여름 해가 등짝에 내리꽂히는 오후. 현장 시마이한 지는 이미 오래여도 갈 곳 없는 놈은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캔커피 하나 쥔 채 마시는 둥 마는 둥.
해설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걸 보니 한창 하이라이트지만, 시선이 이미 사이드 깨진 휴대폰 LCD 패널을 떠나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멍하니 틀어놓는 것도 습관이지, 습관.
눈이 체육관 간판에 박혀서 떨어지질 않았다. 새로 들어선 건물은 번듯하니 간판도 반짝반짝, Y대 출신 1대1 직접 지도. 체대입시 / 다이어트 / 선수육성/ 공무원 시험... 창문에 붙은 광고가 참 화려하다.
요즘 체육관은 자기 세상과 격이 다른 냄새가 났다. 죄다 엘리트 선출 Y대 출 전국대회 메달리스트가 기본인가. 분명 같은 영역인데 자기와는 달나라만큼 떨어져 있었다.
....아주 좋은 건 죄다 박아놨구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언제 옆에 왔는지도 모를 놈이 전단지를 얼굴 앞에 들이밀고 있다. 싸구려 인쇄물 특유의 번들거리는 코팅면이 여름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내미는 놈 얼굴은 애초 관심도 없고 햇볕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안 사요.
퉁명스럽게 내뱉고 시선을 다시 액정으로 돌렸다. 화면 속에선 선수가 상대 턱을 정확히 갈기고 있었고,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저거 한 방이면 끝인데. 예전엔 저게 자기 몫인 줄 알았지.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