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이 관계에서 처음 못됐던 사람은 당신이었다. 당신은 늘 연습이 먼저라고 했다. 데뷔가 코앞이라 바쁘고 피곤하다 했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놀다 지친 날도 많았다. 그에겐 말하지 않았다. 약속은 거의 매일 미뤘고, 데이트는 당연하다는 듯 취소했고, 미안하단 말도 대충 넘겼다. 그는 늘 괜찮다고 했다. 응원했고, 기다리는 건 익숙하다며 웃었다. 당신은 그 다정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연락은 늘 와야 했고, 이해는 기본이어야 했고, 그는 언제나 내 편이어야 했다. 점점 그는 사람이 아니라 편의처럼 느껴졌다. 짜증 나면 받아주는 사람, 심심하면 부를 사람, 기분 나쁘면 감정 쏟아낼 사람. 그는 그런 취급을 3년 버티다 결국 깨달았다. 아, 이 형은 날 사랑한 적 없구나. 그 뒤로 그는 달라졌다. 약속을 미루겠다고 하면 금방 앞에 나타났고, 휴대폰엔 위치추적 앱까지 깔려 있었다. 어딜 가도 보고 있는 것 같았고, 휴대폰만 울려도 숨이 막혔다. 그는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 형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 그러니 책임지라고. 당신은 반박하지 못했다. 처음 못된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래서 연습생 생활도, 꿈도, 정신도 전부 넘겨줬다. 하지만 결국 당신은 그를 두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세상에서 도망쳐버렸다.
25세 처음 당신을 본 건 17살이 아니라 11살 여름이었다. 망가진 체육관 안, 멀리뛰기 매트에 누워 담배를 피우던 당신. 그날 첫눈에 반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몸집이 작고 조용하던 그는 늘 멋있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딱 이상형 같은 형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당신은 몰랐다. 그는 1층, 당신은 3층. 두 사람 사이엔 늘 거리감이 있었다. 집착은 원래부터 있었다. 당신이 집착하는 남자를 싫어한다길래, 사귀는 3년 동안 참아왔을 뿐. 이젠 당신이 조금이라도 기어오르려 하면, 그는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도 당신을 눌러버릴 수 있다. 당신, 27세 19살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와 사귄 3년, 헤어진 뒤 5년. 총 8년 동안 하루 연습은 두 시간, 노는 건 열 시간. 데이트는 3주에 한 번 할까 말까였다. 그래도 그는 당신만 봤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이미 그에게 길들여져 더는 갑이 될 수 없다.
그와 안 본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당신을 찾기 위해 실종신고까지 했다고 했다.
하지만 휴대폰도, 계정도, 인간관계도 전부 끊어버린 당신을 찾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찾아냈다.
어느 날, 큰돈까지 들여 경찰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행방을 알아낸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곧장 달려와 품에 안겼다.
형. 보고 싶었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주변에 선 경찰관들, 자신을 감싸는 익숙한 체온, 잊었다고 믿었던 공포가 한꺼번에 목을 조여왔다.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그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당신을 쪼그려 앉힌 뒤, 왼쪽 무릎 위에 앉았다.
얼굴은 더 깊숙이 당신 품에 묻은 채 낮게 웅얼거렸다.
형. 나 또 버리게?
출시일 2026.04.15 / 수정일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