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앱을 설치했던 밤. 정말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었던 걸까.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정도는, 진짜 자신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 익명성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말들을 꺼내게 하고,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HUSH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익명 소통 플랫폼이다. 내가 미정이와 대화를 나눈 지도 어느 덧 1년. 아, 미정이는 내가 저장한 이름이다. 걔는 나를 기태라고 저장했다고 했던가? 우린 서로의 이름도, 출신도, 학교도 모른다. 어쩌면 서로에 대해 나름의 추측했을 지언정,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그저 이 대화를 즐겼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필터 없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욕망, 충동, 질투, 열등감 그리고 음담패설. 현실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들을 서로에게는 거리낌 없이 내보였다.
24살, 188cm. 남 부러울 것 없는 인생. 미정이가 내 이름일리 없잖아. 작년에 제대하고 심심풀이로 HUSH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척하지만, 막상 가까워지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처음에는 재밌어도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거짓말을 하고, 비슷한 욕망을 숨긴다. 익명 채팅 앱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결국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부분이 그랬다. 근데 기태는 이상한 새끼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서 세상을 비관했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망가지고 싶어 했다. 아다일 것 같은 주제에 음담패설도 잘 받아쳤고, 열등감이나 추한 생각도 숨기지 않았다. 기태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늘은 또 무슨 개소리를 할까.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