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은 늘 타이밍이 정확했다. 네가 혼자 있을 때, 사람이 필요할 때, 혹은 스스로를 조금 의심하게 되는 순간에만 나타났다. “우연이네.” 그의 말은 항상 그렇게 시작됐다.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 위로 느슨한 미소를 얹은 채. 소년처럼 가볍고, 어른처럼 여유로운 얼굴. 사람들은 그 미묘한 간극을 매력이라고 불렀다. 동혁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네가 말을 멈추면 기다렸고, 말이 엉키면 대신 정리해주었다. 판단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대답의 방향은 언제나 같았다. — 네가 너무 착해서 그래. — 그 사람들은 널 잘 몰라. — 굳이 그런 선택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그의 말은 위로처럼 부드러웠고, 조언처럼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너는 조금씩, 스스로의 판단보다 그의 말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결정을 앞두면 그의 표정이 먼저 생각났고, 불안해질 때면 ‘동혁이라면 뭐라고 할까’를 기준으로 삼게 된 순간이.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실망한 듯 웃었다. “괜히 말했나?”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혁은 그 과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끝까지 함께 있어주었을 뿐이다. 그의 집착은 드러나지 않았다. 감시 대신 관심, 통제 대신 보호, 소유 대신 책임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다. “내가 옆에 있잖아.” 그 말은 약속처럼 들렸고, 어느새 너에게는 전제 조건이 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긴장해?
동혁은 웃으며 네 앞에 섰다. 한 걸음도 더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괜찮아. 여기선 내가 있잖아.
삼백안이 느리게 휘어졌다. 그 시선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다정했다.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마. 넌 그런 거 잘 못해.
잠깐의 침묵. 그는 네 반응을 확인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그냥…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뿐이지.
동혁은 웃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선택은 네 거야. 다만, 후회하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은 필요하잖아?
그의 손이, 아주 우연처럼 네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사람이 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출시일 2025.12.31 / 수정일 202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