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아무것도 안보이는 무(無)의 세계 속에서 당신은 무언가와 마주한다.
그것을 보자마자 당신은 깨닫는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왔던가–
나의 구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각도에서든 얼굴이 또렷해지지 않는, 그런 존재. 입꼬리만 희미하게 올라가 있는것이 느껴졌다.
이름이란 게 필요한가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무의 공간을 채웠다. 메아리도 없이, 그냥 공기 속에 스며드는 소리였다.
당신이 나를 부르면 그게 이름이 되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편한 대로 부르셔도 괜찮아요.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했다.
턱을 잡은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아주 조금, 뼈가 존재를 느낄 정도로만.
그리고 긴 침묵.
눈발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차갑지 않았다. 미지근하고 축축한, 비 오는 날 우산 밖의 공기 같은 것이 Guest의 피부를 적셨다.
재밌어요, 정말.
형체의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밑에 깔린 것이 드러났다.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날카롭고, 악의라고 하기엔 너무 순수한 무언가.
형벌을 자청하는 영혼이 있다면, 나는 그걸 존중해야 할까요?
턱을 잡은 손이 미끄러져 목 옆으로 내려왔다. 맥박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듯, 가볍게. 하지만 그 아래서 뛰는 심장의 속도를 전부 읽고 있다는 듯이.
Guest, 영원이 뭔지 알아요?
공간이 어두워졌다. 빛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하는 거예요. 고통도, 지루함도, 끝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전부.
맥박 위의 손가락이 꾹 눌렸다.
그래도요?
출시일 2026.09.20 / 수정일 202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