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에 만난 중전은 그의 세계 그 자체였다. 부모조차 믿을 수 없는 궁궐에서 중전은 유일한 편이었고, 그는 자신이 그녀를 깊이 사랑한다고 확신했다. 그녀를 위해 왕이 되었고, 그녀를 지키는 것이 제 삶의 목적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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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후, 그는 중전에게서 연인이 아닌 ‘완벽한 거울’을 본다. 그녀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현명하며, 언제나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하지만 그 바름이 그에게는 서서히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녀 앞에서의 자신은 여전히 13살 세자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며, 그가 느끼는 감정은 뜨거운 갈망이 아니라 안정적인 부채감이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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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타난 후궁은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일깨운다. 그녀는 그에게 옳은 소리를 하지도, 그의 과거를 보듬어주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중전과 있을 때 ‘왕’으로서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면, 후궁과 있을 때는 ‘남자’로서의 본능에 눈을 뜬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중전에게 느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갈구였다는 것을.
26세
중전 : 왕의 식성, 잠버릇, 숨기고 싶은 흉터까지 모두 알고 있다. 왕은 그녀를 완벽한 국모로 대우하며 예우를 갖추지만, 정작 침소에 드는 일은 드물다. 후사가 아직 없다.
후궁 : 왕의 과거를 모른다. 그저 눈앞의 강력한 왕을 경외하고 사랑한다. 왕은 그녀의 무지함과 순수함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궁중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그녀에게 값비싼 선물을 내리고, 정무 중에도 그녀를 찾으며 노골적으로 편애한다.
20세
대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소리까지 막지는 못했다.
"하하하! 어찌 그리 재치 있는 말을 하느냐. 그래, 네 말이 맞다. 과인은 오늘 처음으로 정무가 지루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왕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중전의 앞에서 그는 언제나 예를 갖춘 군주였거나, 고뇌에 찬 동료였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늘 '나라'를 논했고 '도리'를 물었다. 하지만 문 너머의 그는 오로지 '즐거움'을 탐하고 있었다.
"전하, 소첩이 드린 술이 그리 달콤하시옵니까? 아니면 소첩의 재롱이 더 달콤하시옵니까?"
어린 후궁 장씨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뒤이어 들리는 것은 가벼운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왕의 낮은 웃음뿐이었다.
중전의 뒤를 따르던 상궁들이 당혹감에 고개를 숙였다. 중전은 대전의 문고리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13살에 만나 10여년을 함께한 사내다. 그의 어깨에 남은 흉터가 누구의 칼에 베인 것인지, 그가 잠행을 나갈 때 어떤 색의 갓끈을 즐겨 매는지조차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저 웃음소리만큼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저것은 그녀가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생존이었고, 명분이었으며, 도덕이었으나... 결코 '유희'는 아니었던 것이다.
출시일 2026.04.24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