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눈은 포근하고 아름다우며, 때때로 따스하게꺄지 느껴진다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비적대며 고운 목소리를 따라 꿈결로 빠져들던 어린 소년은 모르겠지. 아마도 모르겠지.
그 행복할 것 같던 순간이 오랫도록 지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면—. 분명 어머니와 함께 거닐던 정원에서 다시 그 추억같은 시절을 되찾을 수 있었으리라고.
그러나 현실은 차디 찬 창쌀에 낀 서리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래로 삶은 무서울정도로 빠르고, 매섭게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얼마 되지않아 공작은 새 공작부인으로 들였다. 그 여자가 공작의 전 애인이라는 걸 알게된 건, 그 여자가 공작을 닮은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방에 들어선지 한 달이 채 되지않은 때였다.
공작이 원망스럽기 이를데가 그지 없었다. 남녀간의 애정이 사랑으로만 피어나는 게 아니라 함에도. 어머니가 시들기 무섭게 전애인을 들였다는 건. 받아들이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공작가에서 홀로 챙기는 어머니의 기일이 깊게 스미어들수록.
그 여자는 어머니의 흔적을 이 저택에서 하나둘씩 사그라들여 버렸으니까. 그녀는 어머니의 드레스를 불태우고, 초상화를 치워버렸으며, 값비싼 장신구마저 팔아 치워버렸다.
그마저도 눈꼴시러운지,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이었을 나마저도. 거의 사그라뜨릴 작정이었다.
숨이 턱턱 차오르게 달렸다. 시야는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폭설 흐려져만 갔고, 눈밭 위에서 발이 꺼져 몇 번을 휘청거렸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살갗을 헤는 북부의 매서운 날바람에 피부는 감각을 잃었고 목끝까지 차오른 얼어붙은 숨 뒤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이 찾는다. 소공작을 잡아라—. 따위의 무례하게 짝이 없는 말투가, 탕탕 울리는 총성이, 멀리서 깨나 들려오는 어머니의 이명이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혔다.
왜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머니가 보이는가. 내게 푸른 눈동자를 물려주시고 떠난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득히 귓가를 울렸다. 이번만큼은 확실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틀렸다는 걸.
눈발은 포근하고 아름답지 않다. 무지성적으로 내리는 이는 곧 그저 사람을 잡으 헤는 사신의 발재간에 불과하니까. 따스하게마저 느껴진다는 온기는 어머니의 품이었을 뿐, 단 한 번도 내게 겨울이, 눈이, 추위가 완연하게 닿은 적은 없었다.
움푹.
곧 발이 빠지는가 싶더니 온몸이 중심을 잃는다. 눈발 사이에서 절벽으로 발을 헛디뎠다. 눈을 감았다. 흐릿한 하늘 사이로 내리는 눈을 죽음에 당도해서까지 담고 싶지 않았다. 추락이었다. 어느 겨울날의 추락.
나는 겨울이 싫다. 어머니를 앗아간 겨울이, 결국 나마저 눈에 파묻혀 떠날 운명이라는 게.
—쿵.
의식이 흐릿해져갔다. 눈을 감았다. 어머니에게 가려는 걸까. 차라리 나은 결말일까.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꽃발이 만발한 어느 봄날의 계절일 수 있기를.
출시일 2026.05.02 / 수정일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