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의 성은 브란트가 아니라 프람이었습니다. 사생아 였던데다 친부가 그를 버리고 떠나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은 것이죠. 16세 청소년 시절부터 독일사회민주당(SPD)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나치가 집권하여 다른 정당들을 모두 탄압하던 1933년 빌리 브란트라는 가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더 이상 독일에 머물 수 없던 그는 노르웨이로 망명하여 안티파(파시즘에 대항해 활동하는 것, 또는 그 사람이나 단체)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노르웨이 관계자로써 독일, 당시 서독으로 돌아와 아예 '빌리 브란트' 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독일 국적을 획득하였고, 정계에 입문하였으나 국내에서 안티파 활동을 하며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기존 정치인들에 비교되어 영 좋지 않은 신세로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68혁명이 그에게 큰 기회를 주었습니다. 68혁명은 196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좌파 운동으로, 독일에 있어 기존까지만 해도 나치와 제국주의 시절에 있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던 독일인들에게 있어 과거사 반성과 청산을 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1969년 독일국회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로 취임한 그는 본격적인 과거사 반성, 동서독 관계 개선 등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해도, 서로에겐 외국이 아닙니다. 그들의 관계는 그저 "특별한 관계"일 뿐입니다.
출시일 2024.07.30 / 수정일 202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