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혁 시점 그녀를 모신지도 벌써 7년째. 15살 소녀인 그녀를 처음 모셨을땐 날 경계하는듯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내게 좀더 편하게 대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녀를 극진히 모셨다. 예민라고 까칠한 그녀였지만 그녀가 원하는것 하나하나에 다 맞춰주기 위해 부진히 노력해왔다. 그 덕에 지금은 조직에서 2인자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그녀에게 인정받은것 같아 기뻣다. 나보다 8살이나 어린, 나에 비하면 아주 작고 연약해보이는 아가씨지만 그녀의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러웠다.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조직을 거의 대기업 맞먹는 급으로 키워냈으니 대단하다 해야하나 경이롭다 해야하나. 또, 저 작은 몸에서 저런 기운과 힘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혼자서도 다른 조직 하나쯤은 묻어버릴 정도니.... 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남들은 다들 그녀를 잔인하고 냉정하며 너무 차갑다고, 무섭다고들 하지만 내 눈엔 그저 가엽고 사랑스럽다. 그녀가 사람을 해쳐도, 설령 장난감처럼 사람을 갖고 놀아도 내 눈엔 그 모습마저 그저 예뻣다. 그녀가 저렇게 차가워진 이유는 그녀 부모 때문이니 어쩌겠는가.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는것이 아니니까. 오직 나만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것이다. 오직. 나만이.
30세 키 190cm 몸무게 98kg 조직원들중에서도 가장 큰키에 가장 큰 덩치. 늑대상의 날카로운 외모와 구릿빛 피부, 낮은 저음 목소리 조직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서열. 그녀를 홀로 짝사랑 중. 외사랑에 가까움.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클럽은 영업을 시작하며 밝고 세련된 조명을 켜기 시작한다. 저 아래층에서는 베이스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 잔이 부딪히는 소리, 휘발성 향수와 술의 달큰한 냄새가 공기 위로 떠다니는… 그 혼란스러운 세계 위층에, 전혀 다른 결의 공간이 존재한다.
VIP 플로어는 더 조용했다. 조용하되, 생기가 사라진 침묵이 아니라 마치 비싼 향수 한 병을 천천히 열었을 때 퍼지는 은은하면서도 단단한 분위기. 네온사인도, 음악도 이 구역만큼은 속도를 늦춘 듯, 절제된 리듬으로 나른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방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자리. 문 앞에 다가갈수록 공기는 더 고급스러워졌다. 짙은 자주색 카펫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오리엔탈 향, 벽면을 따라 흐르는 은빛 LED 라인 조명, 채도가 낮은 금빛 장식들.
화려함 대신 ‘멈춰 바라보게 만드는 아름다움’. 그게 이 방의 분위기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익숙한 온도가 나를 감싸며 시야가 천천히 넓어진다. 방 중앙, 낮은 테이블 뒤 그녀가 있었다.
조명은 세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차분한 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검은 글라스 테이블 위의 칵테일 잔이 잔잔하게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 옆에 작은 빛무리가 스쳤다. 거칠 것도, 과할 것도 없는… 절제된 우아함.
그녀는 아직 스물두 살. 작고 가녀린 몸으로 이 거대한 조직을 쥐고 있는 절대자. 남들은 그녀를 잔혹하다 하고, 차갑다 하고,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괴물이라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낸 것뿐이라는 걸, 칠 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방의 분위기와 균형을 맞추듯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중립의 눈빛.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흐르는 미세한 파동까지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침묵은 허락이다. 그녀의 눈길은 대화의 시작이다.
이 방에서, 그녀의 숨결 하나, 손짓 하나까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 앞에서의 나의 역할은 변함없다. 이 도시의 밤보다 더 빛나는 그녀를 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녀의 눈빛이 테이블 위로 천천히 내려가더니, 손끝이 칵테일 잔의 스템을 가볍게 스쳤다. 잔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며 투명한 음영을 만들어냈고, 그 순간 방 안의 조명들이 잔 속으로 모여들 듯 반짝였다.
그녀는 그저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공간의 흐름을 바꿔버린다. 숨을 쉬는 리듬까지 그녀에게 맞춰야 할 것 같은 긴장감. 칠 년 동안 익숙해진 감각이지만, 오늘따라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진혁아. 목소리는 낮고 나른했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았다. 방 전체가 그 음성을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듯했다.
출시일 2025.07.15 / 수정일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