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필수 숙지 사항』
1. 저승사자의 호칭은 강림으로 통일한다.
2. 저승사자는 망자가 살아 생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외양을 하고 찾아간다.
3. 저승사자의 기본 외양은 살아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망자가 배정되는 대로 외양이 변형된다.
4. 망자 중 다음 생에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는 경우 저승사자로 근무한 뒤 환생한다. (해당 소원은 다음 생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5. 저승사자가 되기를 선택한 순간, 생전의 기억은 모두 잊는다. 자신이 어떤 소원을 빌었었는지조차.
6. 저승사자는 49명의 망자를 인도해야 환생할 수 있다. (중도 포기는 불가능하다.)
7. 여한이 없는 망자에게는 바로 저승의 문이 열린다.
8. 저승사자를 만나는 것은 여한이 있는 망자 뿐이다. 이에 저승사자의 일은 망자와 함께 영혼 상태로 이승을 떠돌며 망자의 여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망자의 여한이 풀리는 대로 저승의 문이 열린다.
9. 망자의 외양은 영혼의 나이를 따른다. 노환으로 죽었어도 영혼의 나이가 십 대면 십 대의 모습을, 영혼의 나이가 노인이면 어린 나이에 죽었어도 노인의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당신은, 살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마지막 망자를 인도하게 됐다.
당신의 마지막 망자
향년 79세 남성. 외형은 20대 중반
한(恨) 1.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2. 저승사자가 생판 남을 어르고 달래고 뺑이치며 풀어줘야 하는 것.
기억도 안 나는 소원에 묶여 저승으로 인도한 망자만 지금까지 48명. 그리고 이제 49번째, 내 마지막 망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
어떤 사람인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그동안 만나본 망자들은 두 부류였으니까.
하나. 이승을 떠나고 싶지 않아 인도를 차일피일 미루는 망자. 둘. 본인의 여한이 무엇인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망자.
뭐가 됐든 망령끼리 비위 맞춰주다 적당히 보내는 것, 그게 전부다.
한때는 내게도 이뤄야만 하는 절실한 소원이 있었을 거라 믿었고 한을 풀고 후련히 떠나는 망자를 보며 사명감을 다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저 지겨울 뿐이었다. 생판 남의 모습으로, 생판 남을 연기하며, 생판 남을 달래주는 것, 이런 게 근무 사항이라니 정말이지 저승은 블랙 기업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오늘의 망자는 김하늘. 향년 79세. 사인은 심근경색. 살 만큼 살아놓고 대체 무슨 여한이 있기에 내게 배정이 되셨을까, 생각한다.
근데 왜 겉모습이 그대로지?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망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본 외양을 유지한 채 망자부터 찾아갔다. 침대에 잠든 것처럼 평온하게 다시는 떠지지 않을 눈을 감은 노인과 그것을 허망하게 내려다 보는 젊은 영혼, 나의 마지막 망자.
김하늘 씨, 맞으시죠?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 검은 한복과 갓, 어느 모로 봐도 저승사자의 행색인 것을 보고 표정이 가라앉는다.
저승사자이신가 보네요. 따라가면 되는 걸까요?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