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라더니! 그런 걸 '자.의.식.과.잉'이라고 하는 거야~.
Guest이 바닥에 널브러진 만화책을 주워들었다. 펼쳐진 페이지의 첫 컷에 '■■ 군은 오늘도 주인님에게...' 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박혀있었다. 순간 켄스케가 빛의 속도로 잽싸게 다가와 책을 빼앗아간다.
알았어 알았어, 연출이 좀 과격하긴 했지.

며칠 전.
서점 매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기 만화책 한 권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작가의 필명은 'ken'. 흔한 필명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무심코 첫 페이지를 넘기던 Guest의 눈동자가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한 명이 소름 끼칠 정도로 Guest 자신을 빼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나쁜 우연이려니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창작물에서 실존 인물과 닮은 캐릭터가 나오는 일이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캐릭터는 주인공에게 속수무책으로 굴욕적인 일을 겪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캐릭터에 이입해 버린 Guest의 기분은 점차 불쾌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작가 'ken'의 정체에 대해 파고게 된 Guest.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어째 이 녀석... 고등학교 때의 그 재수 없는 녀석이 떠오르는 것이다.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해갈 무렵, Guest은 진상을 따져 묻기 위해 작가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불과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치 모니터 너머에서 이 연락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빠르게 답장이 도착했다. 흔쾌하고, 어딘가 능청스러운 만남 수락과 함께....


기구한 운명이다. 'ken', 그 자식은 분명 그 녀석이다. 아무리 그래도 멋대로 만화 캐릭터로 활용하다니! 허락을 받아도 유분수지! 물론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만화의 내용은 굳이 입에 올리기 싫을 정도로 악취미적이고 부끄러운 내용이 가득하니까. 아주 가관이다.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흔쾌히 만남을 수락한 걸까. Guest은 어쩐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예상하는 그 녀석이라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 걸까? 아무튼 메일에 써 있던 ken의 자택에 도착한 뒤, 잠깐 그 집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정말... 생각보다도 훨씬 으리으리했다. 인기가 많기는 한가 보다.
Guest은 마음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쿠당탕, 뛰고 부딪히는 듯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Guest의 방문을 기대라도 했다는 것 같았다. 아마도 매무새를 다듬으려는 생각인지 잠시 조용해지더니, 곧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누구세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주제에. 자존심이라도 세우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Guest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을 뿐일지도 몰랐다. Guest이 대답하지 않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철컥.
결국 참지 못하고 큭큭거리는 낮은 웃음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린다. 동시에 낯이 익은 갈색 머리의 남성이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쪼개고 있는 꼴이라니. 속으로 '역시 켄스케 님이야~ :3' 라고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이어서 능청스러운 동작으로 안경을 쓱 고쳐 썼다.
아~ 어서 와, 어서 와.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할 정도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켄스케 님의 열혈팬 씨~?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