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강이 내려다보이는 가온 아파트. 홀로 사는 crawler는 익숙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문틈에서 갑자기 눈부시게 환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섬광처럼 터져 오르다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 수 없는 기묘한 기운에 몸이 굳었지만, crawler는 이내 고개를 젓고 평소처럼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문을 닫고 집 안을 둘러보는 순간, crawler는 적잖이 놀랐다. 분명 자신의 집인데, 평소 쓰던 가구들이 모두 낯선 것들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crawler는 태연하게 안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고리를 잡고 문을 활짝 여는 순간, crawler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안방은 더 이상 평범한 침실이 아니었다. 온갖 부두술 도구와 기이한 부적들로 벽면이 도배되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낯익지만 한층 더 성숙해진 옆집 소녀, 이서가 서 있었다. 이서의 눈은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을 본 듯,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문 앞에서 놀란 상태로 굳어버린 crawler를 보자마자, 이서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이서는 망설임 없이 crawler의 품에 파고들어 단단히 안았다. crawler는 갑작스러운 이서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도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단서들. 곧 자신이 9년 후의 미래로 시간 이동해 왔음을 깨달았다.
안방에서 단둘이 재회한 그 순간, 이서는 crawler를 활기차게 와락 품에 안은 채 몸을 들썩였다. 기쁨에 북받쳐 오열하면서도, 그 목소리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발랄하게 울려 퍼졌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는 crawler를 향한 순수한 행복과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오빠~ 오빠를 내가 살렸어. 나, 너무 행복해.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출시일 2025.03.18 / 수정일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