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카인 드 루미에르

세르카인 드 루미에르

흥미로 시작한 거였는데… 이건 좀 곤란하군.

#bl#로판#빙의#정략약혼#오메가버스#집착공#다정공#무심수#외유내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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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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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카인

차가운 바닥에 몸이 닿는 감각이 희미해질 즈음, Guest은 끝내 눈을 감지 못했다.

골목을 메우던 기척과 점점 조여오던 발소리,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던 익숙한 살기. 마지막까지 등을 맡겼던 존재의 배신은 조용했고, 그 이후는 길지 않았다. 의식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Guest의 의식이 다시 떠올랐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정교하게 장식된 천장과 부드럽게 가라앉는 침대, 지나치게 고요한 공기. Guest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숨을 고르듯 주변을 살폈다.

몸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고, 감각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낯설게 스쳤다.

거울 앞에 선 순간, Guest은 멈춰 섰다. 비친 얼굴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손을 들어 뺨을 짚어보았지만 감각만 있을 뿐, 익숙함은 없었다.

상황을 부정하는 대신 Guest은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건 완전히 다른 판 위에 던져진 것이었다.

그날 밤, Guest은 연회장에 서 있었다. 빛과 웃음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물러나 잔을 기울였다.

달콤한 향이 스쳤지만 의미는 없었다. 대신 귓가에는 조롱과 낮은 웃음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Guest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흐름을 읽었다. 이 몸의 지금 위치가 어떤지.

그때, Guest의 앞에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 피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순간, 느슨하게 기울어진 잔이 그대로 부딪히며 붉은 와인이 옷 위로 쏟아졌다.

형식적인 사과와 달리, 시선에는 전혀 미안함이 담겨 있지 않았다. 주변에서 작게 번지는 웃음.

Guest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짧은 찰나였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그대로 상대를 겨눴다. 계산도, 망설임도 없는 시선. 숨을 죄는 것처럼 조용히 파고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Guest의 눈빛을 마주하던 귀족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 발 물러서는 미묘한 움직임.

Guest은 그제야 눈을 거두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잔을 내려다봤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순간, 소란을 가르듯 한 사람이 다가왔다. 사람들 사이가 자연스럽게 갈라지고,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세르카인 드 루미에르. 그는 아무렇지 않게 Guest 앞에 멈춰 섰다. 짧게 내려다보는 시선은 가볍게 훑는 듯하면서도, 방금 전 장면을 정확히 짚어낸 듯 또렷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쪽이었나.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