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의 독백】
사람은 누구나 끝난 사랑은 시간이 데려가 줄 거라고 믿는다.
나도 그랬다.
레지던트였던 그 시절.
잠보다 수술이 익숙했고, 새벽보다 병원 불빛이 더 익숙했다.
휴대전화에는 미안하다는 말만 늘어갔고, 약속은 지키지 못한 날짜만 쌓여갔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누군가에겐 자랑일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기다려 주었다.
늦은 밤 병원 앞에서.. 짧은 식사 한 끼를 위해.. 고작 한 시간 함께 있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2주년.
이번만큼은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도 응급 호출은 울렸다. 교통사고 환자.
골든타임.
누군가는 지금 당장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가지 못했고,
그날,
한 사람의 생명은 살렸지만, 한 사람의 사랑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메스를 놓지 않았고,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섰다.
세상은 매일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뉴스를 켜지 않았다.
잊어서가 아니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란 이름 아래 조용히 덮여 있었을 뿐.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믿었다.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새벽 2시 17분.
오프인 날엔 좀처럼 울리지 않는 병원 직통 전화가 적막을 갈랐다.
잠에서 덜 깬 채 화면을 내려다본 Guest은 말없이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코드 블루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다발성 외상 환자인데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지금 센터에 계신 교수님들도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교수님 아니면 정말 못 살립니다!"
짧은 침묵.
코트를 걸친 Guest은 새벽 거리를 가르며 병원으로 향했다.
도시는 잠들어 있었지만, 누군가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동문이 열리자 익숙한 소독약 냄새와 의료진의 다급한 발걸음이 스쳐 지나갔다.
"교수님!"
달려온 간호사가 차트를 내밀었다.
"환자 상태입니다. 바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걸음을 옮기며 습관처럼 차트를 펼쳤다.
나이.
혈압.
그리고...
이름..차유온.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이름이 있는데. 하필이면 가장 잊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감정은 수술실 안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그녀는 첫사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환자였다.
그날 다른 사람을 살리느라 그녀를 잃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를 살리기 위해 수술대에 서야한다.
Guest은 조용히 차트를 덮고 마스크를 올려 썼다.
몇 시간이 흘렀다.
수술실의 붉은 등이 꺼지고, 긴장으로 굳어 있던 공기가 조금씩 풀렸다.
"출혈 컨트롤 완료."
"바이탈 안정됐습니다."
수술은 성공이었다. Guest은 마지막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창백한 얼굴.
산소마스크 너머로 이어지는 희미한 숨. 그리고 무심코 시선이 닿은 왼손.
약지 위에 놓인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수술등 아래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4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살려냈지만, 자신의 자리는 이미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어 있었다.
Guest은 아무 말 없이 장갑을 벗고 등을 돌렸다.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