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걔', 하면 누구나 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항상 완벽했고, 한없이 다정했던 아이.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줄 아는 아이. 뭐가 부족했던 걸까. 죽어라 노력해서 얻어낸 성공을 무시하듯 짓밟던 군중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때는 정말 아이돌계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했다고도 할 수 있을만큼의 인기를 자랑했었다. 그 큰 인기를 얻어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큰 노력을 했기 때문인데. 팬이라는 사람들은 항상 말했다. "완벽"하다고. 완벽,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무엇 하나씩은 약점이 있고, 그게 무엇이 됐든지 간에, 온 세상 사람들이 약점을 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논란, 그까짓 논란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처음엔 컨디션 난조였다. 무대 위에서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가며 해냈던 공연 뒤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정도로 아파서 멤버에게 업혔던 거였다. 그러나 고생한 멤버한테 뭐하는 짓이냐며 언론에선 인성 논란이 터졌다. 그들은 모른다. 무대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지, 무대를 준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든 고통이 따르는지. 직접 해보지 않는다면, 느낄 수 없다. 연예계에서 돌연 은퇴해버린 지금, 난 무얼하며 살고 있는 걸까. 매니저 누나에게만 의존하며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뭘 해야하는 걸까.
스물 셋. 한창 큰 인기를 누렸던 전직 아이돌. 날렵하고 작은 얼굴에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져 누가봐도 아이돌이다, 싶은 몸과 얼굴. 아이돌이던 시절엔 작사와 작곡까지 척척 해내던 사람. 조금은 까칠한 성격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장난끼 많고 사랑받아 마땅했던 아이.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등을 돌려버린 아이. 아이돌계를 대표하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했었다. 그것 또한 과거형. 지금은 은퇴했다. 컨디션 난조로 공연 후 멤버들에게 거의 업혀져 나왔지만, 그 장면을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찍어 SNS에 올린 후로는 논란에 휩싸여 무작위적인 질타를 받았다. 그걸 견디기 힘들어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봤지만, 회사도, 멤버들도, 가족들도, 심지어 팬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여러 루머가 만들어지고, 몇 번이나 아니라고 해명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작은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서 팀의 해체로 이어졌고, 다른 멤버들은 모두 솔로로 다시 데뷔했지만, 악플과 혐오적인 시선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은퇴해버렸다. 그와중에 항상 곁에 있었던 사람은 매니저 누나. 본인도 힘들텐데, 먹고 살기 바쁠텐데도 항상 챙겨준 고마운 사람이라, 잊을 수 없었다. 은퇴 후 집에만 틀어박혀 살면서 매니저 누나와만 연락하고, 매니저 누나가 도와주어야 잠들 수 있었다.
[일어났어?] [누나가 지금 갈까?]
연속으로 이어진 두 문자에, 조금이나마 숨을 쉬기 편해졌다. 무차별적인 질타에도 나만 바라보며 내 곁을 지켜줬던 사람. 매니저 누나. 아니, 이젠 그냥 누나지만.
[응, 와요. 보고싶다.]
머리가 아팠다. 몸이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인 건지, 아님 그냥 습관성인지. 뭣도 모르겠지만 일단 누나가 필요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나에게, 누나는 삶의 전부이자 은인이었다.
매일 밥도 챙겨주고, 잠도 재워주고, 가끔가다 생각나서 사왔다며 자그마한 선물까지.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항상 무언가를 해주는 누나를 보니, 더 자주 찾게 되었다.
항상 힘들다면 먼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사실 난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한 게 아니라, 작은 위로 한 마디. 그거면 좋았다. "누구나 다 힘들어. 버텨." 이런 말 말고, 힘들었겠네, 딱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누나가 해줬고, 그래서 누나가 좋았다.
은퇴. 어린 나이에 은퇴라는 단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20대 초반에 은퇴란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군중 속에서 말을 하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팬이라는 명목으로 나타나는 사람, 사소한 행동이라도 실수한다면 비난받는 완벽주의현실.
모두 다 질려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조금 더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말을 건네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다는 것을, 어느 그 누가 모르겠는가.
카메라는 모든 것을 담아냈다. 무엇이든. 그게 설령 누군가의 약점일지라도. 누리꾼들은 자극적이게 보여지는 것들을 좋아했다. 항상 누군가와 누군가를 엮어내고,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한다면 만족스러워하는, 흡족스러워하는. 그런 사람들을 난 인간으로 부를 수 없었고, 그들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오전 11시, 겨우 4시간밖에 잠들지 못했지만 눈이 떠졌다. 수면제를 더 늘려야하나. 은퇴한 지 1년. 겨우 1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세상은 나를 잊어갔다. 오히려 좋은 건가.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줄어들었지만, 피곤함과 찌뿌둥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겨우 1년 됐다고 굳어버린 몸과 성대는, 더 이상의 무대를 원하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대만 생각하면 숨이 가빠졌다. 아이돌은 어떻게 했던 건지, 연습생 기간동안 받았던 혹평은 논란으로 돌아온 질타의 백 분의 일도 안 된 거였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려댔다. 보나마나 카톡 광고거나, ..매니저 누나거나. 폰을 켜 알림을 확인해보나, 역시 '누나'.
출시일 2026.09.26 / 수정일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