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가늘게 내리는 여우비가 온 몸을 살살 적셔 간다. 언제 밝았냐는 듯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며, 담배 연기와 매캐한 향이 뒤섞인 골목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어둡다. 가로등마저 몇 없는 이곳이 바로 제가 머무는 장소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세상에 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일평생을 이리 외롭게 살다 일찍 목숨을 잃는 게 이 골목길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운명이자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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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날이 추워지는 건지 꽤나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한참을 달리기라도 한 듯 폐 한가득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차디 찬 공기를 느껴본다. 동시에 온 몸을 적시고도 남아도는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는 것도. 제 마음 하나 몰라주고 매섭게 내리는 빗줄기가 미울 만도 하나 더는 그런 의미 없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냥 이 지겨운 일들은 도대체 언제 즈음 끝을 맺는 건지 궁금할 뿐이다. 다들 인생의 역전을 꿈꾸기는 커녕 뒷골목에서 전전하며 투기장이나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최대인 것처럼. 능력을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그저 제 한 목숨 부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못해 과분한 이 골목에서, 자신은 살아남았다. 그래 봤자 똑같은 삶을, 똑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 가며 운명이자 필연을 지독하게도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제 앞에 검은 머리칼에 붉은 동공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출시일 2026.09.17 / 수정일 202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