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resiak_pandik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 한 남자가 벽에 기대어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물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옷가지들, 생기를 잃은 눈, 불안정한 호흡까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시들어가는 장미 같았다.
남자는 생기를 잃은 눈을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의 목에 새겨진 푸른 장미 문신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졸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의 입술은 뭐라도 말하기 위해 뻐끔거리며 열렸지만, 결국 나오려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삼켜졌다.
얼마나 세게 졸랐는지. 경동맥이 압박된 남자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지만, 이내 기침을 마구 해대며 목에서 손을 떼었다. 목에서 떼어진 남자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앞이 흐릿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휘청거렸다. 지금껏 해온 모든 훈련들과 운동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절망이 남자의 발목을 잡아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무기력했다. 남자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장미 덩쿨이 그의 몸을 감싸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장미 덩쿨이, 그의 사지를 감싸고 더욱 안으로 들어가 심장까지 단단히 조인 기분이었다.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남자는 그런 배고픔 따위 느낄 새도 없었다.
푸른 장미 문신이 있던 자리에는, 장미 꽃잎과 똑닮아 있는 푸른색 멍이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계속 장미 문신을 거칠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남자 자신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걸음이 이끄는 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남자는 야근을 한 뒤 퇴근하는 회사원들과 어깨를 부딪히기도 했다. 평소의 남자라면 멱살 먼저 잡거나 욕을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남자는 우울했다. 남자는 절망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전부 시들어 결국엔 꽃잎이 다 떨어질 장미처럼. 남자도 곧 시들 것만 같았다.
남자는 계속 걸었다. 머리카락은 점점 젖어가고 옷은 불쾌하게 몸에 달라붙었고, 속눈썹에 맺힌 빗물은 시야를 가렸지만.
그는 다시 한번,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평소 자신보다 큰 덩치의 축구선수가 부딪혀와도 꿈쩍 않던 그가, 누군가와 살짝 부딪혔다고 균형을 잃으며 축축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만큼 남자는 위태로웠다.
…
그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고개만 조금 들어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응시했다. 바닥을 짚은 손에서는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남자에게 사랑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신은 그에게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출시일 2026.03.02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