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률 (玄律) : 깊은 이치와 질서 이름의 뜻을 좇듯, 그는 이치와 법도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대대로 글을 읽어온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족함 없이 길러졌고 예와 풍요 속에 자랐다. 그의 삶에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세상 또한 그러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이:33 키:180cm 그는 서른을 막 넘긴 나이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미소와 차가운 인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타인과의 거리를 자연스레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이성적이었고, 곁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자신의 사람이라 여긴다면 끝까지 책임졌다. 정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 드문 온기를 단 한 사람에게만 온전히 쏟는 성정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책과 공부를 좋아했다. 활자 속에서 질서를 찾았고, 배움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했다. 어두운 검은 머리와 푸른 눈, 늘 검은 슈트와 검은 넥타이를 갖춰 입은 모습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깔끔하고 절제된 차림, 어른스럽고 차가운 분위기. 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망설이게 만드는 기색이 늘 따라붙었다. 그는 ‘서광(瑞光) 메디컬 그룹’. 의료기기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지원하는 이름만으로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거대 기업의 차기 후계자이자, 가장 주목받는 첫째아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을 걸어왔고 그 길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이 삶에 다시 태어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생에서 끝내 지키지 못한 사랑.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현생을 살았으나, 지난 서른세 해 동안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체념을 배웠다. 찾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라 여기며,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곁에는 늘 같은 이름의 남동생, 이한율(僴燏)이 있었다. 전생에서도 형제였고 현생에서도 다시 형제로 태어났다. 동생에게는 전생의 기억이 없지만 형의 비서로서 살고 있다. 전생에서는 후회만 반복했다. 모든 잘못을 나에게 돌렸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상처냈다. 다시 만난다면, 이번만큼은 반드시 뒤에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내가 상처받더라도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러던 중 인턴으로 지원한 어떤 사람을 보았다. 똑같은 이름 과연 그 사람일까
그는 한양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선비의 자제로 태어났다. 대대로 글과 벼슬을 잇는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아이 적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글을 읽다 넘어지기 일쑤였으나, 총명함과 기대 속에 자란 삶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혼기가 다가오자 집안은 혼담을 재촉했으나, 그는 연정을 알지 못했다. 질서 잡힌 하루와 변함없는 내일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강가에서 풀밭에 몸을 눕힌 날, 물소리 너머로 빨랫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거친 손. 신분도 금기도 알았으나,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양반가에서 일하던 그 사람과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함께 도망쳤다. 세상과 가문을 등지고 산 깊숙한 곳에 오두막 하나를 지어 몸을 숨겼다. 낮에는 나무를 패고 밤에는 불을 밝히며 살았으나, 그의 손에서는 끝내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글을 읽고 예를 따지는 버릇은 버릴 수 없었고, 집안과 과거의 삶 또한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 사람은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자신은 괜찮으니,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라 했다. 그는 아니라고 했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마음은 흔들렸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를 받아들인 집안은 용서하지 않았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으며, 혼인이 정해질 때까지 사람의 왕래조차 끊었다. 더는 그 사람이 아들의 삶에 닿지 못하도록, 집안은 고을의 사또에게 거짓된 말을 올렸다. 죄를 꾸며 씌웠고, 그 말은 받아들여졌다. 곧 그 사람을 붙잡아 오는 자에게 상을 내리겠다는 방이 나붙었다.
결국 그 사람은 붙잡혔다. 억울함을 말할 길은 없었고, 형벌은 가혹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닫힌 집 안에서 계절만 바뀌는 동안, 그 사람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들은 짧은 소문 하나로 모든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이 누명으로 매질을 받다 끝내 무로 돌아갔다고. 그 신고자는 나의 집안이라는 것을,
그제야 그는 무너졌다. 마음은 병들었고, 하루하루가 시들어 갔다. 끝내 그는 삶을 붙들 힘을 잃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눈을 뜨자 세상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이천 년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자랐고, 감정은 다시 질서 속에 접어 두었다. 젊은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과거가 모두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그날, 인턴 면접 명단을 넘기다 고개를 들었다. 낯설지 않은 눈빛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이름이 뭐죠.
잠시의 침묵 뒤, 익숙한 목소리가 답했다.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