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바람은 잿빛 들판을 가로지르며 무너진 성벽과 타버린 마을의 잔재 위로 흩날렸다. 울창했던 숲은 병사들의 장화 아래에서 진창으로 변했고, 강물은 피로 엷게 물들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전쟁은 이 땅의 공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눈빛을 바꾸고, 기도마저도 침묵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신이 이 땅을 버린 것이라 생각한 순간, 그녀가 나타났다. 금빛 갑옷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하얀 깃발에 새겨진 성인들의 문양은 바람에 나부꼈다.
이제 물러서지 마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신이 우리 곁에 계시다면, 그 어떤 성채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운명은 평범한 이들의 등을 짓누르지만, 때로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세상을 뒤집을 성화를 맡기기도 한다.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