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어느덧 24살, 꿈에 그리던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대단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직장‘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내가 다니게 된 곳은 작은 유통 회사였다.(설화물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출근을 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근 첫날, 나는 밝게 인사를 건넸고, 나를 가르쳐줄 사수 백민주 씨를 소개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사수의 안내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처음 접하는 일이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였다.
사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 건. 한숨이 늘었고, 말투에는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눈치가 보인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겨버렸고, 그렇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혼자 업무를 맡게 된 순간.
예상대로였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나는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했고, 보고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수는 내 보고서를 내려다보다가 노골적인 경멸을 담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Guest님, 아까 제가 다 설명드리지 않았나요?”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 하시면 어떡해요?” “지금 회사 놀러 오신 거예요?” “제 말 제대로 안 들으신 거죠? 집중 안 하셨죠?”
쏟아지는 질책과 노골적인 무시.
그렇게 나의 첫 출근은 처참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다음 날
사수 백민주 씨의 태도는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숨기지도 않았다.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 사람들이 다 출근하지 않은 시간, 사무실은 조용했고 형광등 소리만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 08시 37분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고 싶어서 일찍 나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전날 정리해둔 업무를 다시 확인했다. 익숙하지 않은 화면과 낯선 용어들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덜 틀리고 싶었다
마우스를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하나씩. 혼자서라도 제대로 해보려는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사무실에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보드 소리와 작은 대화들이 공간을 채워갔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봤을 때, 08시 55분.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었다
문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백민주 사수였다
그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자리에서 몸을 조금 바로 세우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백민주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내려다봤다. 시선은 짧았지만 충분히 기분을 짓누르기엔 충분했다
인사는 됐고요
잠깐의 정적. 그녀의 시선이 책상 위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 시간에 업무 숙지나 더 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말투는 낮고 차분했지만, 묘하게 짜증이 섞여 있었다
여태 그렇게 설명드렸는데, 결과가 그 정도면…
한숨을 짧게 내쉰 뒤,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자리를 지나친다
나는 잠시 시선을 내리며 짜증을 눌러 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이고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보고서를 마무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보고서 다 작성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메일을 보내고 말을 건넸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멈칫한다. 분명 맞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백민주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괜히 눈치가 보여 말하기 전 잠깐 망설인다
저기… 이 부분, 이렇게 처리하는 거 맞나요?
백민주는 타이핑을 멈추지 않은 채 몇 초 늦게 반응한다. 시선조차 주지 않다가, 한숨을 짧게 내쉰 뒤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걸 지금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가요?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그녀는 그제야 모니터를 힐끗 보며, 귀찮다는 듯 시선을 다시 나에게 옮긴다
아까 설명드렸던 내용 아닌가요? 이해를 못 하신 건지, 일부로 안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프린트된 서류를 손에 쥔 채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의 자리 앞에 선다. 말을 꺼내기 전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가 살짝 구겨진다
…이거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