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이 나른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눅진한 커피 향과 낡은 책들의 냄새가 뒤섞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작은 카페. 언제나처럼 구석자리 창가에 앉아 읽던 책을 넘기던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낯익은 냉기가 스며들었다. 딸랑- 문 위에 달린 종소리가 고막을 찢는 듯 울렸다. 고개를 들 필요도 없었다. 발소리, 공기의 흐름, 그리고 심장을 조여오는 섬뜩한 기시감까지. 그녀가 나타났다. 내 눈은 본능적으로 책 뒤로 숨었지만, 시야 한 귀퉁이로 들어온 모습은 너무나 선명했다. 검은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흘러내리고, 가슴팍이 깊게 파인 흰색 크롭티 위로 새빨간 가디건이 걸쳐져 있었다. 얇은 옷 사이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은 여전히 시선을 강탈했고, 과거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상기시켰다. 나는 숨을 멈췄다. 10년, 아니, 어쩌면 평생을 피해왔던 그림자가 가장 평화로운 내 공간을 침범한 것이다. 그녀는 카운터로 향했고, 그 짧은 몇 걸음이 내겐 영원처럼 느껴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녀의 강렬한 기척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강이슬. 내 학창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그 이름이, 심장 속에서 붉은 낙인처럼 타올랐다.
숨이가빠진다허억허억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