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여자. 솔직히 지겨웠다. 뭐 재미난거 없나 싶었는데 조직원들이 PVP 게임 이야기를 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누가 누구의 캐릭터를 죽였고, 찾아서 복수를 하러간다며 씩씩대는 모습을 보니 조폭새끼가 게임 속에서 두들겨맞고 다니나 싶어서 비웃었다.
“형님도 한번 같이 해보실래요?”
조직원들 중에서 한명이 무심코 던진 말에 시작한 게임. 현실에서도 사람에게 칼빵놓고 거칠게 구르는 새끼라서 그런가, 게임에서도 짜릿했다.
낮에 게임하는건 기본, 밤에는 조직원들 돌려가며 게임을 시켰다. 현질도 몇억은 질렀고 랭킹 1위가 되었다.
내 캐릭터를 죽이는 애들은 복수로 응징해주며 사냥터에 발도 못디딛게 만들었다. 게임 내에서 시비가 붙었을때는 직접 현피로 만나서 두번 다시는 까불지 못하도록 손봐주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내 캐릭터를 누군가가 죽이고 토낀다. 시간도 새벽시간을 위주로 마치 나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귀신같이 때를 알고 들어오는데 느낌이 싸하다.
PC방 1번 자리. 왼쪽 구석 맨끝이라 인기가 많은 좌석이다. 그 좌석에 한달전부터 지정석처럼 앉기 시작한 남자가 있다. 가끔씩 조직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우루루 끌고오는 어딘가 무서운 사람이다. 딱봐도 사이즈가 조폭 같다.
PC방 아이디는 블랙.
새벽에 PC방이 한가할때마다 심심해서 시작한 게임이 떠올랐다. 그 게임 랭킹 1위도 블랙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킬하러 다녀오는데 그게 뭐랄까, 묘하게 재밌었다. 어릴때 남의집 벨튀하는 느낌이랄까?
1번 자리 손님이 시킨 너구리 라면을 끓이며 혼자 피식 웃었다. 라면에 계란 토핑까지 올려주고 단골손님이니까 김치를 서비스로 그릇에 담았다. 1번 자리 손님 테이블에 라면을 올려두며 모니터를 힐끗 봤다.
...!!!
라면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고개를 살짝 돌려 테이블 옆에 서 있는 알바생을 올려다봤다.
뭘 봐.
별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젓가락을 집었다. 화면 속 캐릭터가 또 죽어있었다. 벌써 세 번째다. 새벽 시간대에 정확히 접속해서 칼 한방 갈기고 튀는 새끼. 접속 패턴을 분석해봤는데 매번 같은 시간대, 같은 사냥터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아 씨발, 또 죽었네.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면서도 눈이 모니터에서 떠나지 않았다. 턱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짜증이 목까지 차올라 관자놀이가 씰룩거렸다.
내 닉네임 ‘토끼공듀’. 처음엔 귀여워보여서 만든 아이디였는데 이제보니까 너무 여자인 티가 난다. 1번 자리에 앉은 권강한이 잠깐 담배피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카운터에 쭈그려 앉아서 게임에 접속했다.
쓱쓱- 샤샤샥.
[블랙 캐릭터가 사망했습니다]
이 짜릿하고 재밌는걸 어떻게 끊어. 안들키면 되지.
흡연실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핸드폰으로 게임 화면을 확인하던 강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씨발, 또?
화면을 다시 봤다. 분명 사냥터에서 몹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기습. 닉네임을 확인하려는데 캐릭터가 쓰러지면서 로비가 떴고, 이미 킬로그는 사라진 뒤였다.
'토끼공듀'.
그 닉네임이 또 눈에 밟혔다. 어젯밤에도, 그저께도 새벽만 되면 귀신같이 찾아와서 자기 캐릭터를 도륙내는 놈. 아니, 년인가? 토끼공듀라니, 뭔 개같은.
출시일 2026.07.20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