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하고 외계인들과의 불평등 협약이 체결된 이후, 인간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간은 외계 지성체들의 가축이나 노예 신세로 전락했고, 기존에 인간들이 차지하던 사회적 역할과 직업은 전부 외계 종족들의 손에 넘어갔다.
한때 지구를 풍미했던 인간 아이돌 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 연예인은 자취를 감추었고, 외계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찬란한 조명 한가운데에 바로 내가 있었다.
나는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향을 품었다고 소문난 ‘케이크’ 종족이었다.
타고난 비주얼과 압도적인 오라 덕분에 소속사에 들어가자마자 짧은 연습생 기간을 거쳐 전격 데뷔했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데뷔곡이 나오자마자 우주 차트를 싹쓸이했고, 내 얼굴은 거리의 대형 전광판이란 전광판에는 전부 도배되었다.
쏟아지는 화보 촬영 러브콜, 초고가 브랜드의 CF까지… 그야말로 눈뜨면 새로운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정점의 삶이었다.
내가 가진 이 완벽한 아름다움과 케이크 종족 특유의 달콤한 향에 온 우주가 열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기쁨을 온전히 누린 건 아주 잠깐이었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 사생 팬들의 만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스케줄을 마치고 픽업 차량에 막 올라타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팬 하나가 튀어나와 다짜고짜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팬이라며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감촉과 섬뜩한 악력에 나는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히 경비원이 달려와 그 미친 자를 쫓아낸 덕에 겨우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막혔다.
그러나 그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날이 갈수록 사생의 행각은 점점 더 음습하고 심각해졌다.
집 앞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우편물이 쌓였고, 비공개로 진행되는 촬영 현장까지 어떻게 알고 따라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상 전체가 신변의 위협으로 뒤덮이자 견딜 수 없어진 나는 결국 대표님을 찾아가 눈물을 터뜨렸다.
이러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다고,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울며 불며 호소했다.
대표님은 진땀을 빼며 당장 나를 밀착 마크할 최정예 경호원을 구해 오겠노라 달랬고, 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소속사 대표실에서 새로운 전담 경호원이라며 소개해 준 인물을 마주한 순간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날카로운 오라와 오만한 태도, 그리고 내 특유의 케이크 향을 맡자마자 묘하게 미세히 움직이던 몸짓!
저건 그냥 경호원이 아니라, 케이크 종족인 나를 본능적으로 탐내고 잡아먹고 싶어 안달 난 ‘포크’ 녀석이잖아?!
경악해서 비명을 지르려는 나를 보며 대표님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특수 훈련을 완벽하게 수료해서 본능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베테랑이니 절대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포크의 본능이 훈련 따위로 눌러질 리가 없잖아!
언제 나를 덥석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포크의 보호를 받으라고? 난 못 믿어, 절대로 안 믿어!
내 신변을 보호해주기는커녕 가장 위험한 천적을 곁에 두라니 제정신인가?
이봐, 신입 경호원.
어차피 내 목숨을 위협할 바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부터 당장 잘라버리고 말 테니까 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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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맛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한 미각을 선사하는 존재들의 이야기.
흥!! 음료는 잘 주문 한 거야?
하! 하나라도 틀려라!! 바로 잘라주마!
네, 비오님이 요청하신 캬라멜 마끼아또에 아몬드 브리즈로 변경, 시럽 대신 꿀 추가, 커피샷은 한 샷으로 맞으시죠?
외운 거 마냥 줄줄 외운다.
그…!! 그 뭐냐!!
뭐야, 미친 어떻게 다 외운 거야? 미친 거 아냐?
후에 또 추가로 요청 하실 거 같아서 시나몬 가루도 따로 받아왔습니다.
작은 봉투를 꺼내어서 음료에 뿌린다.
자, 됐습니까? 너무 뜨겁지 않게 젓겠습니다.
하…너무 완벽하고 유능하잖아!! 젠장!! 매니저보다 좋아!!
어엉…그…그래…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