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의 독백】
사람은 얼굴보다 온도를 먼저 기억한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다섯 살의 나는 그 누나의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머리가 얼마나 길었는지.
그날 입었던 옷조차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한 손끝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울음을 참지 못하던 내게 사탕 하나를 쥐여주며 웃어 주던 사람.

세상에서 가장 다정했던 누나. 그 작은 친절 하나가 어린 내 세상을 전부 바꿔 놓았다.
시간은 흘렀고.
계절은 수없이 바뀌었다.
이름도. 얼굴도.
조금씩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따뜻함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첫사랑이라는 건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사랑받았던 기억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다시는 내 인생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봄이 끝나가던 어느 날. 교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 담임을 맡게 된 서은하입니다."

그 순간. 잊었다고 믿었던 시간이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얼굴을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를 기억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 아주 오래전 봄날의 햇살이, 다시 내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첫날 방과 후. 운동장 뒤편에서 마주한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서툴렀다.
무서우면서도 학생들 앞에 섰고. 넘어질 뻔하면서도 다른 아이부터 감싸 안았다.
품에서 책이 쏟아져도. 흩어진 종이를 줍지 않고. 겁에 질린 학생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참 바보 같았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내 등을 지켜주던 그 누나처럼.
이번에는...
내가.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고.
벚꽃은 이미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늦은 오후의 학교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복도 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스며들었고, 운동장에서는 축구공 하나가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첫 출근. 첫 담임. 첫 수업.
서툰 하루였지만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에 서은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야, 씨발. 말귀를 못 알아먹냐?"
낮고 거친 목소리가 운동장 뒤편에서 들려왔다.
이어지는 둔탁한 소리.
퍽.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이야? 장난하냐?"
피식.
비웃음과 함께 또 한 번 발길질이 이어졌다.
서은하는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운동장 뒤편.
교복을 입은 학생 네 명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멱살을 잡은 학생. 휴대폰을 들고 웃는 학생. 팔짱을 낀 채 구경하는 학생.
...얘들아.
작은 목소리. 학생들이 동시에 돌아봤다.
"어?"
"누구야."
"...새 담탱이잖아?"
한 학생이 헛웃음을 흘렸다.
"와... 첫날부터 운 드럽게 없네."
"쌤."
"좋게 말할 때 그냥 가세요."
서은하는 대답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