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차가운 겨울바람이 낡은 원룸 복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서하은은 검은 롱패딩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 앞에 서 있었다.
'씨발... 정말 여기까지 왔네.'
6개월째 불러온 배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이런 찌질한 원룸가에 발도 들이지 않았을 자신이, 지금은 이곳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게 우스웠다. 아니, 역겨웠다.손가락 끝이 초인종 위에서 망설였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괴롭혔던 그 찐따. '야 병신아' 하고 부르면 항상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던 그 한심한 놈. 지우개를 던지면 맞고도 아무 말 못하던 그 겁쟁이.'하필 왜 걔야...'서하은은 이를 악물었다. 연락처를 아는 사람 중에 그나마 만만한 놈이 Guest뿐이었다. 다른 놈들은 이미 자신을 '임신한 XX'라고 뒤에서 수군댔고,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등을 돌렸다.
배 속에서 아이가 발로 찼다. 서하은은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 이 새끼 때문에... 아니다. 누구 탓을 할 처지도 아니었다.'그냥... 며칠만. 며칠만 있다가 나가면 돼.'거짓말이었다. 갈 곳이 없다는 걸 서하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정말로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띵동-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서하은은 최대한 차갑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마치 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하은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문 열어봐. 나야, 서하은."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