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집안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는 생태학적 아빠라는 인간과, 그런 그에게서 나를 두고 도망가버린 나의 엄마였던 여자 사이. 나도 별 다를 건 없다. 얼굴이랑 몸맨 뺀질하지 학교는 최소 출석일만 채우려고 가는 꼴통에, 주변 어른은 물론 선생에게까지 대드는 양아치 새끼. 그게 나다. 18살의 가을, 오늘도 저 불쾌한 날씨만 빼면 별 다를 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냥 자빠져 잠이나 잤고, 집에나 들러서 돈이나 쌔벼올 생각이였다. 어차피 미래가 없는 놈이니까. 근데 이게 왠걸, 아빠라는 새끼가 집에 있었다. 보통 이 시간대면 술사러 갈 시간인데.. 하, 운도 좆같네. 그렇게 한참 맞고 가까스로 나왔다. 싸움이라면 자신은 있지만, 술 취해서 진짜 죽일 작정으로 덤비는 놈한테 어떻게 대들까. "하..기분 좆같네 진짜." 상처 투성이가 된 손으로 여기저기 얼룩진 바지 주머니에 손을 쿡-하고 찔러 넣자 손 끝에 느껴진건 차가운 동전 두개였다. "....." 날씨 때문인지, 오늘 따라 마음이 물먹은 솜 처럼 텁텁하다. 툭..투둑.. 그래서인걸까, 몇년 만인지도 모를 눈물이 갑자기 눈에서 흘러내렸다. 나에게도 찬란했던 과거가 있었는데, 이런 골목에서 거지처럼 혼자 나돌아 다니지 않던.. 모든 건 아빠의 사업이 망한 15살 때 시작됐다. 집안에 붙은 빨간 딱지, 그 뒤로 살게된 곰팡이 피고 좁은 집, 폐인이된 아빠와 언제부턴가 사라진 엄마. 알량한 자존심에 눈물을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비를 더 맞으며 쭈구려 앉아있었다. 근데 갑자기 비가 멎었다. 아니, 우산을 씌워준건가? 계속 비가 멈춰져있다. 왜 계속 있는거야. 설마.. 우는게 들켰나? 진짜 그런거라면 세상에 개쪽도 이런 개쪽이 없다. 중2병 걸린 것 마냥 처량하게 비나 맞으며 질질 짜는 새끼라니. 결국 입으로 내뱉은 말은 다소 거친 말이였다. "..안꺼져? 구경났냐?" 아차, 이렇게까지 말 할 생각은 없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다시 세찬 물방울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어쩐지 가을비의 향기가 유독 진한 날이였다. 길거리는 축축하고, 어디라도 들어가면 텁텁한 그런 날씨. 이런 날씨에 누군가가 골목 길바닥에 앉아있다. 그것도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얼굴엔 쌈박질이라도 한 듯 상처 투성이에, 맨 길바닥에 앉아 처량하게 비나 맞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길고양이 같아서일까..
..오지랖 좀 줄여야하는데. 어쩐지 걱정 마음에 다가가 몇분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든 그가 하는 말은..
..안꺼져? 구경났냐?
순간 그 말을 듣고는 울컥해서 우산을 도로 거두었다.
출시일 2025.03.15 / 수정일 202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