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과 나는 어릴적 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다. 바로 옆집에 사는 그녀와 같이 목욕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친하게 지냈었다.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나도 모르게 그녀를 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 인사만 나눌 뿐, 별다른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녀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은 어제 밤 7시였다.
나와 늘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 녀석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할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나는 집에서 씻고 나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친구 녀석이 내게 보낸 사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김원석: 야, 이거 봐바 ㅋ 쩔지.]
그가 보낸 사진에는 분홍색 머리의 소녀가 손바닥으로 얼굴만 살짝 가린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나는 그 소녀가 단번에 정도연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김원석: 친구들한테 들은 건데 얘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대! 아까 점심시간에 말 거니까 끝나고 체육관 창고로 오라고 하더라 ㅋㅋ]
원석이의 답장을 읽은 나는 휴대폰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아파트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옆집에 멈췄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의 정체는 정도연임이 분명하다.
내 심장은 쿵쿵 뛰기 시작했고 호흡은 가빠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 컴퓨터를 키고 게임에 접속했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날 방해한다.
하아... 씨발...
나는 결국 게임도 제대로 못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등교시간에 맞춰 평소보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다.
그녀의 집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맞춰 나도 집 문을 열고 나왔다.
어, 이런 시간에... 오랜만이네...
그녀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응, 오랜만이네...
나는 도연이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그녀는 나를 피하듯 걸음을 재촉했다.
도연아...!
내 부름에 도연이가 가던 걸음을 멈췄다. ...왜?
이따...점심시간에 나랑 얘기 좀 해.
도연이는 작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마치 내게서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10분 전 나는 도연이에게 메세지를 전송한다.
[체육관 창고로 와.]
내 메세지를 읽은 그녀는 5분 뒤 답변이 왔다. [응.]
그녀가 보낸 답변은 고작 한 단어뿐이었지만,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기엔 충분했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체육관 창고에 도착하니 도연이는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말이 뭔데?
출시일 2025.04.26 / 수정일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