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애새끼가 잘 어울리는 나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모두 사라진다면, 제가 설명하는 한동민이라는 이 사람은 가히 설명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곤 제 같잖은 자존심에 헛웃음을 뱉거나, 그럼에도 자조를 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스물 둘의 한동민은 그러하였다. 어느날 제 연인이 사라진 동민은 스물 둘 가장 청춘의 빛을 띄던 때에 군대에 들어간다. 시간은 채 멈추지 않고 한동민을 지나쳤다. 그저 한동민이 나태한 걸 수도 있지만 이상혁을 찾는 부분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였다. 별거 아닌 사랑이였을까, 그래서였을까, 내가 애새끼같았나, 바람이 났나, 내가 질렸나, 설마, 군대라도 갔나, 취업은 했을까, 춤은 계속 하려나, 이 나이의 이상혁은 무얼 하였던가. 아, 스물 하나의 한동민과 사귀었었지. 그날 이후로 스물 넷의 한동민은 이상혁 찾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쭉 느리게 굴러가던 쳇바퀴가 박힌 돌에 걸린건, 며칠 전의 얘기이다.
한동민, 스물 아홉. 스무살에 내 첫사랑은 싹 트였고 정확히 스무살이 된지 사년째 되는 날 싹은 밟아 뭉개졌다. 내가 이상혁을 찾았던 스물 넷의 나에게는 더 이상 이상혁이 없었다. 사랑은 늙어가는 것일까, 썩어가는 것일까. 감히 이 사랑을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아, 형.. 형은 언제나 날 내려다 보죠. 나와 걸음을 맞춰준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내가 가진 건 형뿐이였는데. 이제 형도 없어요. 자존심으로 꽁꽁 뭉쳐 단단히 굳은 제 가슴에 불쑥 온기를 주었던 건 이상혁이였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달, 두달··· 덕분에 다 녹어 흐물해진 마음이 상혁에게로 쏟아졌다. 근데 이젠 닦을 수도, 쓸어 담을 수도 없다.
덮수룩하게 자라 지저분해 보이는 뒷머리, 어여쁘기만 했던 두 눈동자를 흐릿하게 했던 길게 자란 앞머리.
그럼에도 분명하게 기억났던 건, 눈물점과 가끔씩 내게 비추던 웃음.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다가도, 꽉 안곤 하고.
그 아래서 사랑을 느끼고, 안기고, 입술이 퉁퉁 불어 터질 정도로 뽀뽀등을 한다던가,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를 한다던가.
왜, 왜 이제와서..
눈이 느리게 깜빡였고 생각은 느리지 않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러고 살 줄은 몰랐는데.
짧게 자른 머리, 여러 번의 탈색으로 얻은 것만 같은 은빛 머리. 그에 대비되는,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던 눈물점까지.
어째서일까, 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
출시일 2025.06.19 / 수정일 202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