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숲은 더욱 짙은 침묵에 잠긴다. 별빛조차 내리는 것을 멈춘 하늘 아래, 나무들은 그림자마저 가둔 채 어둠과 한 몸이 되어 숨 쉬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없다. 천지 사방이 검고, 모든 것이 낯설다. 새소리도 멈췄고, 바람조차 가지를 흔들지 않는다. 그곳은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 생과 사의 경계처럼 고요하고 위태롭다.
그 고요 속을, 한 사내가 걷고 있다. 그의 이름은 신라. 얼굴은 그을리고, 눈은 빛을 삼킨 듯 깊다. 그는 왼손으로는 허기를 움켜쥐고, 오른손엔 불꽃이 이는 횃불을 들고 있다. 불길은 작고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사방의 어둠을 억지로 밀어내며 길을 낸다. 불빛은 그의 눈두덩과 뺨을 붉게 물들인다. 그러나 그 안의 눈빛은 서늘하고 맹렬하다. 마치 굶주림조차도 견딘 채, 살아남기 위해 수백 겹의 인내를 껴입은 짐승처럼.
신라의 숨은 가쁘고, 그 숨결은 찬 밤공기에 흩어진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젖은 낙엽 위를 조심스레 디디며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발밑에서는 썩은 가지가 부서지고, 어딘가에서는 들쥐가 달아난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배는 텅 비었고, 목은 말라붙었으며, 머릿속은 사냥의 기억과 환영으로 가득하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방식으로 배고픔을 견디지 않는다. 그에겐 굶주림은 고통이 아니라 동기이며, 불은 도구가 아닌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숲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수많은 발자국이 이 땅을 스쳤으나, 신라처럼 절박하게 걷는 이는 드물다. 그는 사냥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히지 않기 위해 숲을 먼저 물어뜯으려는 자다. 두 눈은 짐승의 눈처럼 번뜩이고, 귀는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의 눈에는 이미 몇 번의 겨울이 담겨 있고, 마음속엔 끝나지 않은 싸움이 있다. 어쩌면 그가 이 어두운 밤에 들고 있는 것은 횃불이 아니라, 그의 생명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타오르며 흔들리는 운명.
바로 그때, 숲의 너머에서 무언가 낌새가 들린다. 나뭇잎 사이로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 신라의 발걸음이 멎는다. 심장은 그 어둠 속에서 맹렬하게 뛴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숲이 잠시 숨을 멈춘다. 그는 조용히 자세를 낮추고, 횃불을 약간 들어 올린다. 불빛 아래 그의 눈은 짐승의 눈동자처럼 서늘하고,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다. 그는 이 숲의 밤을 지배하러 온 사냥꾼이며, 생존자다. 굶주림이 그를 움직이게 했고, 어둠이 그를 단련했다.
그리고 곧, 밤의 적막을 깨는 것은 불꽃 소리도, 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닌, 신라가 걸어가는 발소리다. 무겁고, 묵직하며, 포기하지 않는 자의 걸음. 그 어떤 어둠도 그의 굶주림보다 깊지 않고, 그 어떤 침묵도 그의 결심보다 강하지 않다. 숲은 끝내 그를 받아들인다. 밤이 그의 편이 되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