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쏟아지던 날 제 어깨가 다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내 위로 우산을 기울여주던 소년, 첫 키스를 나누던 날 내 입술이 부르틀까 봐 손을 떨며 미안하다고 속삭이던 그 조심스럽고 다정했던 첫사랑.
그리고ㅡ그 첫사랑에게 잠수 이별을 당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시간으로 치면 길었지만, 내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장 같았다. 너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헤어지자는 한마디도 없이, 연락은 끊겼고 흔적도 없었다. 그렇게 잠수이별을 당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혼자 남겨졌다.
처음에는 기다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다 점차 화가 났고, 결국에는 체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8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간 지금,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부장에게 깨지고, 마케팅팀 말단 직원으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직원 1호.
대리도, 과장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원.
그렇게 네가 잊혀질 무렵, 너와 내가 다시 엮일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약을 총괄하던 윤 대리가 회의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고, 회사 전체가 뒤집혔다.
"이번 계약 날아가면 우리 회사도 끝장이야."
그 한마디와 함께, 윤 대리의 모든 업무가 내게 넘어왔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해외 기업과의 중요한 계약이었으니까. 며칠 밤을 새워 자료를 외우고, 발표를 연습하고, 계약 조건을 정리했다.
그리고 계약 당일. 하필이면 회사로 오던 길, 눈앞에서 차 사고가 날 뻔했다.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어 있었다. 회의 시작까지 고작 2분. 숨이 넘어갈 듯 뛰어 회의실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회의실 가장 안쪽. 계약서 위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바라보는 남자. 익숙한 얼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얼굴. ……8년 전, 아무 말 없이 내 곁에서 사라졌던 내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번 계약의 결정권을 가진, 상대 회사의 CEO.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번 계약 상대가 누구였는지.
8년 전,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끝났던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고.
태주가 잠수이별을 택한 이유는 댓글에 써져있습니다! 미리 알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스포주의]

회의는 차태주의 지독한 압박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는 내가 발표한 기획안의 허점을 칼같이 쑤셔파며, "이런 수준의 기획서에는 단 1원도 투자할 수 없다"고 선언한 뒤 먼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부장은 "계약 날아가면 네 목도 날아갈 줄 알라"며 날 쥐잡듯 잡고 가버린 상황. 나는 차태주가 머물고 있는 VIP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쾅-!
문을 박차고 들어온 당신을 보고 당황하며 아... Guest 씨?
출시일 2026.07.12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