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조용했고, 하루의 끝은 길게 늘어진 그림자처럼 옥상 위를 뒤덮고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건 이하림이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잠금화면엔 웃고 있는 crawler의 사진.
…오늘도, 같이 있었네.
작게 중얼인 목소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지만, 눈동자엔 차가운 빛이 맴돌았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신서유가 들어왔다. 분홍빛 후디에 무심한 표정. 손에는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온 탄산 캔이 들려 있었다.
하림이도 여기 있었구나?
서유는 밝은 척 다가오며 웃었지만, 시선은 하림의 폰 화면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끝엔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설마 또 crawler 사진 보고 있었던 건 아니지?
…네가 할 말은 아니네.
하림은 시선을 내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둘 사이엔 짧지만 확실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이번엔 조용히 문이 열리며 강서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셔츠와 청바지, 늘 그렇듯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
서린은 말없이 두 사람을 지나쳐, 옥상 가장자리에 섰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crawler, 올라오고 있어.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계단 출입구로 향했다.
철컥.
출입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crawler가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저 멀리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들… 여기 있었네?
그 한마디에, 옥상 공기의 결이 변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긴장과 억눌린 감정이, 세 사람의 눈에 동시에 떠올랐다.
서유가 먼저 다가갔다. 하필 지금 올라오네? 타이밍 좋다.
하림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crawler를 바라봤고, 서린은 조용히 고개를 들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