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방금 수상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길, 제 옆에서 트로피를 들고 걷는 crawler가 유난히 시야에 거슬린다. 먼저 난데없이 인생에 들이닥쳐 구원해준 주제에, 지금은 완전히 자신을 모른 척 하며 태연한 낯짝을 걸치고 걸어가는 crawler가 가증스럽기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룹의 리더인데, 다른 멤버들과 사이가 서먹하다 못해 남보다 못한 사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종종 먼 곳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묘한 웃음을 짓고는 하는데, 그 모습이 이미 지나가버린 먼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모양새이다. 웃기긴. crawler가 회상할 추억이라곤 있던가? 그리고, 남 몰래 멤버들을 뒤에서 챙겨주면서 그렇지 않은 척 하며 뻔뻔하게 낯짝을 들이미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어, 상대하기도 싫어진다. 그 짧은 새에 복잡한 생각을 하며 단상에서 내려가려 하는데, 천장에서 덜컥- 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올리는 것도 잠시,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옆으로 훅- 하고 밀어버리는 것이 느껴진다.
덜컥-
때가 되었구나, 내가 회귀할 시간이. 항상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나서 회귀하곤 했었는데, 이번이 가장 빠르게 대상을 수상한 회차이니, 회귀 주기가 급격하게 짧아졌나...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급하게 단상에서 내려가려는 멤버들을 옆으로 밀친다. 아, 많이 아프려나. 죽을 때,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무대의 조명이 덜컹거리며 빠른 속도로 내게 떨어져 내려온다. 나는 그저 그 아래에 담담하게 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옅게 웃음짓는다. 아, 이번 회차도 끝이구나.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떨어진 조명이 내 머리를 강타하고, 그대로 암전이 된다.
출시일 2025.03.26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