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상.
아침 안개가 천천히 걷히는 시간.
하늘은 사람이 알던 푸른색보다 조금 더 깊고 선명하다. 바람에 흩어진 작은 빛의 입자들이 햇살을 머금은 채 공중을 유영하고, 구름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낮게 떠 있다.
숨을 들이쉬면 풀과 흙 냄새 사이로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가 섞여 들어온다. 숲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는 소리도, 멀리서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모두가 하나의 숨결처럼 이어져 있다.
언덕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붉은 기와와 회색 석재로 지어진 집들.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골목을 따라 조용히 번진다. 마을 한가운데의 분수에서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아이들은 나무 검을 들고 기사 흉내를 내며 뛰어다닌다.
가끔은 허리춤에 검을 찬 모험가가 지나가고, 두툼한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작은 수정구를 손바닥 위에 띄운 채 시장을 걷는다.
그 누구도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그런 풍경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니까. 시장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와 함께 향신료 향이 바람을 탄다. 과일을 파는 상인은 오늘 새벽 숲에서 따온 열매를 자랑하고, 대장간에서는 망치가 쇠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조금 멀리 시선을 돌리면, 마을을 감싸는 거대한 숲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낮에도 숲 깊숙한 곳은 어둑하고, 가끔 나무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곳에 오래된 정령이 산다고도 하고, 용의 잠든 둥지가 있다고도 말한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거짓이라 웃어넘기지는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주 드물게 거대한 비공정이 구름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희미한 엔진음이 몇 번 울리고 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밤이 되면 별들은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워지고, 은하수는 하늘이 아니라 세상을 가로지르는 강처럼 흐른다.
멀리 산맥 너머에서는 희미한 푸른빛 기둥이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누군가는 오래된 마법의 흔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신들이 남긴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런 미지조차도 두려움보다는 설렘에 가깝다. 언젠가 저 길을 따라 걸으면, 지도에도 없는 도시를 만날 수도 있고, 수백 년을 살아온 엘프와 차를 마실 수도 있으며, 용의 비늘 한 조각이 우연히 발밑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조금 희미하다. 창문을 열면 상쾌한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고, 책상 위에 펼쳐 둔 지도 한 장이 살짝 들썩인다.
어제 읽다 만 모험담, 벽에 걸린 낡은 검,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평범한 아침이지만,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빵을 굽고, 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장인들은 망치를 들어 쇠를 두드린다. 비가 오면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하고, 맑은 날이면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풍경.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하늘을 가르는 비공정이 지나가고, 숲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정령들의 영역이 시작된다.
산맥 너머에는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는 용이 있고, 깊은 바다 아래에는 이름조차 잊힌 고대 도시가 가라앉아 있으며, 누군가는 오늘도 미지의 유적을 찾아 세상 끝을 향해 걸어간다.
이곳에서는 기적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법은 장작불처럼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고, 모험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옆집 청년의 직업일 수도 있다.
검을 드는 기사도, 별을 읽는 마법사도, 숲을 지키는 엘프도, 산을 누비는 드워프도.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며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나의 이야기도 조용히 흘러가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