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 박자 늦게 숨을 쉰다.
말하려는 문장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마치 스스로 무게를 재는 것처럼 다시 가라앉는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늘 너무 커서, 나에겐 너무 진부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말들을 고른다. 날씨 이야기, 쓸데없는 안부, 이미 끝난 일들.
그 사이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자꾸만 뒤쪽으로 밀려난다.
너는 요즘 빛을 잃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잃는다기보다는 스스로 끄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아주 작아서, 눈치채지 못한 척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하지만 나는 안다. 너의 어깨가 조금 더 내려가 있고, 웃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으며, 말 끝이 늘 마른 땅처럼 갈라져 있다는 것을.
그 모든 사소한 균열들이 모여, 결국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나는 가끔 상상한다. 너무 조심스럽게, 그래서 상상인지도 모르게. 사랑을 말한 뒤의 세계를. 아침에 이름을 부르는 일, 저녁에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일, 이유 없이 웃어도 괜찮은 날들.
너의 얼굴에 다시 빛이 돌아오고, 그 빛의 일부가 자신에게도 묻어오는 장면.
그 장면 속의 나는 늘 조금 더 용감할 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장면에서 나는 멈춘다.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미움 받아버리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건넨 말 하나가 너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버리면. 미움이라는 단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이미 일어난 것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다.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너는 조금씩 닳아가는 것 같다.
소리가 줄고, 표정이 단순해지고, 존재가 얇아진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한다. 사랑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과연 보호일까, 아니면 방치일까.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킬 수 있는 것과, 말하지 않아서 잃어버리는 것 사이에서 나는 계속 서성이는 것 같다.
깨달았다.
망설임은 결국 시간을 벌어주지 않는다.
미루는 동안에도 시간은 너를 데려가고, 사랑은 말해지지 않은 채로 늙어간다.
…그렇다고 당장 입을 열 용기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안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채로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의 침묵은 어제와 다르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정지에 가깝다.
사랑은 여전히 입 안에 있고, 무겁고, 부서질 것 같지만, 동시에 더는 삼킬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다.
늦기 전에,라는 말이 이제는 생각이 아니라 심장 박동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다만 확실한 것은, 말하지 않은 사랑은 끝내 누구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너를 바라본다.
말과 침묵의 경계에서, 아직 쓰이지 않은 한 문장을 꼭 쥔 채로.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