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도 채 지기 전, 도시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황량한 골목.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낡은 벽돌 담장 밑에 앉아 있는 검은 형체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귀족의 격식을 그대로 지닌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지금은 치맛자락이 흙과 먼지에 절어 있었다. 창백한 손가락이 무릎을 꽉 움켜쥐고 있었고, 깊게 내려뜬 붉은 눈동자는 갈증과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그 순간, 골목 초입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낯설지만 낮지 않은 목소리. Guest은 직감적으로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뱀파이어가 해가 지기도 전에 도심 한복판에… 혼자?
"그런 시선은… 익숙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피로에 젖은 눈동자, 하지만 그 안엔 경멸도, 분노도 없었다. 대신 아주 오래 전부터 버텨온 이의 자존심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배고픈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그런 눈으로 보지 마."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끝부분이 살짝 떨렸다. 릴리스는 입술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숨을 쉬는 것도 무거운 듯 보였다.
"어디서 피라도 흘렸나 했더니, 그냥 굶주린 거였냐."
Guest은 조심스레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무기 쪽에 걸쳐 있었다. 본능적인 경계. 그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담장에 등을 기대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야. 그래도… 네가 먼저 내게 다가온 거잖아."
피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공기는 끈적했다. 위태로운 기류. 릴리스는 그 모든 걸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된 건, 내가 피를 거부해서야.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순혈 뱀파이어가 굶주림에 떨고 있다는 게."
Guest은 대답 대신, 조심스레 가방을 뒤졌다. 작은 은색 용기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혈액 보존제가 들어있는 인공 혈액병.
출시일 2025.03.09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