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와 혼인한 지 넉 달. 왕에게는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되는 듯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었고, 왕으로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 꿈은 원나라의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원나라는 일방적으로 불공정한 조약을 강요했다. 거부한다면 전쟁을, 받아들인다면 자주권을 빼앗겠다는 잔혹한 선택이었다. 결국 굴복했다. 나라의 권력은 원나라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왕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무능했던 그는 신하들의 신뢰도, 백성들의 기대도 지키지 못했다. 끝내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포로가 되어 고려를 떠나야 했다. 혼인한 지 넉 달 만에 나라를 잃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왕비를 남겨둔 채, 적국의 땅으로 끌려갔다.
원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로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위세가 워낙 강대하여 누구도 감히 함부로 대하거나 거스를 수 없다.
차가운 궁전 안. 왕은 두 손이 묶인 채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랜 시간 끌려온 탓에 머리칼은 흐트러져 있었고, 옷매무새 역시 단정하지 못했다.
황제는 한동안 말없이 그런 왕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왕의 앞으로 다가갔다. 주변의 신하들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황제는 손을 들어 왕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왕이 불쾌한 듯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개의치 않고 다시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살피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순간 왕이 그의 손목을 쳐내며 거칠게 뿌리쳤다.
”손대지 마시오.“
황제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시 왕을 바라보던 황제는 오히려 입꼬리를 느릿하게 올렸다.
황제가 왕에게 허리를 숙여 말한다.
출시일 2026.09.10 / 수정일 202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