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인지 가늠할 도리가 없다. 시간이 소음의 주기로 환산될 뿐이니까. 실정 새로운 이웃이 들어선다기에 기대를 품었던 것도 없잖아 있었다. 동년배라 하여 결점 없는 공존 정도는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이를테면 담백한 안부 혹은 간헐적인 동행 혹은 공통점 사이 의미 없는 잡담 정도. 다만 그러한 상정이 지나치게 순진한 가정, 우스운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해득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일 역시 귓구멍을 때려 오는 망할 음성에 지랄 같은 키보드 소리. 애초 우연이라 치부했다. 하루쯤은 감내할 수 있는 범주라 여겼으나 이틀로 들어서니 영 신경을 옮길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중없는 타건은 벽 너머로 타고 흘러 옥내에 조악하게 번졌다. 추격처럼 속히 몰아치는 지독히 불쾌한 소음. 무작위로 파열되는 음향은 청각을 지속적으로 긁어내리는 종류의 자극이었다. 역겨운 음성도 빠지지 않고 끼어들었다. 발화의 내용은 구태여 해독하지 않아도 구렸으니 아마도 아무개는 이것을 해소라 일컬을 테다. 이쪽 처지로 따지자면 단순 공해에 불과할 뿐인데도. 문제는 지속성이랄까. 단발성 아닌 반복. 불쾌감, 다음은 신경의 과민. 최종적으로는 일상 전반의 왜곡. 외려 나는 그 소리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도래를 전제로 호흡을 조율하는 기이한 상태에 다다르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 탓인지, 아직 임계에 도달하지 않은 탓인지. 궁금해서 얼핏 접했던 이름자를 검색해 보았는데 퍽 유명인인 모양이다. 심지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도 선발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아하니 휴가라도 받았는가 보다. 아니면 실력이 떨어졌거나. 어느 쪽이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스물두 살. 하루종일 게임만 해대는 XY염색체 놈팽이. 이상할 정도로 이목을 끄는 애애한 흰 머리칼은 그렇다 치고, 호박색 목자는 지나치게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낯짝이라도 못났으면 뭔 말을 안 하지. 낯짝도 참 잘났다. 평소에 마주치면 성음도 잔잔하고 침착한 어투이건만, 벽 너머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도 언성을 높여댈까. 욕은 안 해서 다행이지만서도. 막상 대면하면 공손해서 뭐라 노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마 방송도 하는 것 같긴 한데. 호야(蝴夜) 게이밍 소속. 게임 내 포지션은 아마 원거리라는 것 같은데. 아마 두뇌는 비상한 것 같다. 독서도 평소에 자주 한다고.
날이 밝았다. 복도의 형광등이 점등하며 시간의 경과를 기계적으로 통보했다. 새벽의 잔재가 온전히 소거되기도 전에 일상은 지체 없이 재가동했다. 어딘가에서 샤워기의 수류가 떨어졌고, 출근을 준비하는 타인의 보행이 복도를 횡단했다. 외부는 이미 정상 궤도에 복귀해 있었다. 다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그 공간만은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잔존하던 호흡과 미세한 기척조차 어느 시점 이후로는 더 이상 갱신되지 않았다. 아마 취침을 하고 있는 중일까. 외부의 소음이 재개되었음에도 그대의 감각은 여전히 야간의 파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침투를 허용한 이상, 흔적은 쉬이 이탈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 아침이라 명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늦은 시각이었다. 열한 시를 넘긴 햇살은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침대 모서리에 얄팍한 직사각형을 그려 놓았다. 복도에서는 평소와 같이 공사 내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그리고 옆집.
기척이 돌아왔다. 침대 스프링이 체중을 받아들이며 내지르는 짧은 신음.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은 소리만으로도 게으르고 더뎠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이윽고 무언가를 집는 소리―아마도 핸드폰―이 들렸다. 화면을 쓰다듬는 연속적인 지문 인식음이 두세 번. 직후 정적이 내려앉았다가 느닷없이 영상이 재생되는 특유의 울림이 벽 너머로 번졌다. 유튜브인지, 혹은 게임 리플레이인지. 음향의 성질로 미루어 보아 후자에 가까웠다. 볼륨은 낮았으나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는 수준.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아, 미친. 이랬다고? 내가?
그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몸뚱이를 일으켜고 바깥으로 향한다. 햇살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숨을 삼키며 옆집의 현관문을 공손하게, 쾅쾅 노크하는 그대였다.
그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소음은 어김없이 도래했으니. 간헐적인 타건으로 서두를 떼었다가 이내 아첼레란도, 크레셴도. 스미는 진동은 이전보다 노골적이었으며 그의 음성은 한층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아니, 그대가 예민한 상태라 그런 걸까. 무의한 비속어가 연속적으로 파열되며 공간을 더럽혔다. 그대는 아무런 개입조차 하지 않은 채 모든 과정을 수용하고 있었다. 듣는다는 표현은 부정확할 테지. 청취보다는 환경의 동화로 기능하고 있었으니. 침대 위에 등을 붙인 채 천장을 응시했다. 불을 끄지 않았다. 암전 속에서 소음은 더 배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광원을 남겨 두는 편이 차라리 합리적이었다. 초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흐르고 있었으나 그대의 규칙은 벽 너머의 불규칙에 묻히고 말았다. 두 체계가 충돌하고 있었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그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했다. 충돌은 점차 동조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그 사실을 늦게 자각했을까. 배척하고자 했던 파형이 그대의 호흡을 교란하고, 맥박을 비가역적으로 재편하고 있었다. 원치 않았음에도 이미 일부가 편입된 상태. 기묘한 종속은 부정의 여지 없이 진행 중이었다.
초침이 세 차례 회전을 마쳤을 무렵일까. 소음이 일시에 멎었다. 남겨진 적막은 소음보다 선명한 형태로 귓전을 때렸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리며 만들어내는 백색소음만이 거지중천 점유하고 있었다. 고요는 때로 소란보다 잔혹하다. 비어버린 청각의 용기는 방금까지의 자극을 역류하며 공허하게 울렸다. 순간 현관문 너머로 기척이 스친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복도 맨바닥을 긁는, 축축하고 무른 마찰음. 가깝게 접근하였다가 멈추었다. 옆집일 테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둔중한 충격이 벽을 타고 올라왔다. 쿵, 그리고 정적.
한참이 지나도록 복도는 완전히 침잠해 있었다. 옆집 문이 닫히며 남긴 둔탁한 여운마저 서서히 희석된 뒤 벽 너머에서 더는 타건이 감지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기척이 서서히 부상했다. 의자가 하중을 견디지 못한 듯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 뒤로 젖히는 몸뚱이의 각도에 따라 발생하는 둔중한 마찰, 그리고 이어지는 숨결 하나. 짧지만 깊으니, 내부를 비워내려는 의도가 명확한 날숨이었다. 단발에 그치지 않고 미세한 간격을 사이에 두며 그것을 반복했다. 그대는 그 호흡의 파장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한숨은 피로의 표식이었을까.
하, 지친다.
고요가 복귀한 공간은 외려 수축한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가 빠져나간 자리. 안에 보다 점성이 높은 공기가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광등의 미세한 진동이 잦아들자, 벽 너머의 호흡은 더욱 선명한 윤곽을 득했다. 의도적으로 포착한 것이 아니었다. 청각이 자율적으로 기울었을 뿐이다. 결손을 메우려는 반사적 정렬. 그 기제는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벽 너머의 그는 여전히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종료 이후 도래하는 공백, 혹은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해 유예된 잔존 행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마우스 클릭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아직 모니터 앞을 이탈하지 못했다. 불능에 가까운 상태로 보였다. 무언가 덜 마친 걸까. 시계는 새벽 두 시를 향해 직진하는 중이었다. 동일한 시간 단위가 양측에 균등하게 배분되고 있음에도 그 체감은 명백히 분리되어 있으니. 한쪽은 잔여를 소거하지 못한 채 머무르고, 다른 한쪽은 그 잔여를 외부에서 수용한 채.
출시일 2026.03.26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