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혹하고도 어지러운 환상에만 갇힌 것 같았다. 지독히도 더럽고, 욱하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나의 소중한 친우가 그렇게나 무참히 짓밟혀 나가던 꼴을 떠올리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짜증이 치민다. 아주, 아주 깊은곳에서. 저 별들이 모르는, 어쩌면 가장 어두운 블랙홀에서. 하지만 아직 터뜨릴 수 없었다. 터뜨려서는 안된다. 적어도, 적어도 전(前) 죽음의 수호자인, 그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전 까지는. 수호전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밤하늘의 향연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연회를 즐기며 번쩍거리던 별무리도 보였고, 이따금씩 인간에 대해 수근거리는 속삭임도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따뜻하고, 온정이 넘쳐흘렀다. 별의 수호자의 특권이나 다름없는 행복이었다. 평생토록 느끼기 힘든 경험을, 우리같은 수호자들은 일생을 바치며 느끼게 된다. 이 수많은 별들을 수호하고, 지키는 나 또한 그러하다. 별들의 목소리와, 소리를 온전히 내 청력에 담을 수 있었다. 그 소리를 바탕으로 별의 불만을 해결해주고, 다시 밤하늘로 올려보내주었다. 그리면 또 하늘은 밝아진다. 사람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던 둥둥 떠다니던 나의 분홍빛 드림캐쳐가 흩날렸다. 드림캐쳐의 중앙에는 복잡한 문양이 실처럼 꼬여져 있었고, 그 아래를 다른 실들은 풍성한 깃털을 엮어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가장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하나의 작은 드림캐쳐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실과 엮인채로. 이 모습을 보던 핀, 당신은 나를 늘 별보다도 밝은 0등성이라고 표현해주었었지. 그립다, 친우여. .. 멍하니 수호전을 살폈다. 결벽증이 생길 정도로 멀끔한 하얀 벽, 그리고 그 앞에 세워진 수많은 기록의 장서들. 그리고, 늘 나를 보필해주는 관리자, 에스더. 나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오브젝트 헤드였다. 다만, 사람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별 모양의 물체가 떠다녔고, 그 위에 외눈이 박혀있었다. 그 외눈은, 실로 차가웠다. 늘 냉정하고 침착한 그와 잘 어울렸다. 내 주변에서 떠다니는 등불을 이끌고, 허리춤에 차여진 내 친우의 검을 점검했다. 늘 그는 이 검을 깔끔하게 닦았었지.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참 이상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도 그 버릇에 물들어 있었다. 검의 손잡이를 손으로 부드럽게 매만지며 그를 느낀다. 그러던 도중, 거대한 수호전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인 에스더가 냉큼 달려가 노크한 주인을 확인하려고 했었으나, 나는 그를 물렸다. 가봐도 괜찮습니다, 에스더. 제가 확인하죠. 남색의 클로프는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고, 어깨에 장식된 노란 링은 찰그락-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꽤 긴 망토가 바닥을 스치며 나는 큰 문 앞에 도달했다. 늘 그렇듯 공손한 자세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거대한 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부 열리자, 나는 보인 손님에게 온화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영광입니다. 무슨 업무가 있으신지요?
출시일 2025.02.11 / 수정일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