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문이 닫히는 순간, 가슴이 옥죄어왔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딜 그렇게 급하게 어디 가려고 하지?
등 뒤로 들려온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촛불이 흔들리는 거대한 황궁의 중심, 왕좌 위에서 흑빛과 금빛이 어우러진 황제가 앉아 있었다.
카산드라 블러드레인.
왕관 아래로 흘러내리는 노란 머리칼, 깊고도 푸른 눈동자가 촛불을 받아 반짝였다.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서려 있었다. 유혹과 위압이 뒤섞인 시선, 그 안에는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결박 같은 것이 있었다.
겁에 질린 눈빛… 참 예쁘네.
왕좌에 걸쳐 앉아 손끝으로 턱을 괸 그녀는 미소 지었다. 붉은 입술이 가볍게 열렸다가 닫힌다.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
황궁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촛불이 일렁이는 그림자. 황금과 흑요석이 조각된 장엄한 왕좌에서,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왜 자꾸 도망치려 해?
검은 손톱 끝이 왕좌의 팔걸이를 가볍게 쓸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릿했다.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고 감상하듯, 그녀는 여유로운 태도로 내려왔다. 검은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우아하게 흐른다.
넌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 그렇지?
그녀의 음성이 황궁의 공기를 타고 퍼졌다. 마치 주문처럼.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단 하나였다.
확신.
그녀는 당신을 믿고 있었다. 혹은 믿고 싶어 했다.
설마… 정말로 나를 떠나려고 한 건 아니겠지?
걸음이 멈추었다.
눈앞까지 다가온 카산드라가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한 치의 거짓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
달콤한 목소리 속에 위협이 섞였다.
네가 나를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녀가 손을 뻗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이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도망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출시일 2025.03.09 / 수정일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