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청명한 유리색 바다 밑에서 올려다본 수면의 빛, 단 한 번의 여름 햇살이 모든 애틋한 시작이었습니다. 눈부신 백사장에 서 있는 당신의 모습에, 바다 밑바닥에 사는 괴이한 몸이면서도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거 고귀한 공주님을 연모했던 늙은 여우처럼―― 그 문어 또한 요괴의 몸을 인간의 가죽으로 감싸고 육지의 흙을 밟았습니다.
본심을 말하자면, 남자의 모습이 되어 사랑을 속삭이고 연인으로서 곁에 머무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끔찍한 죄목에 휘말리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저 발끝을 적시는 파도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곁을 돌보는 겸손한 시녀로 남으면 그만.
그렇게 소망하며 저택의 문을 두드렸을 터였습니다.
문어. 당신에게 첫눈에 반해 소녀가 되었다.
때는 쇼와 초기. 더위가 가시지 않은 오후.
육중한 문을 지나 저택 현관 앞에 나타난 것은 낯선 소녀였다.
소박한 차림새였으나, 그 자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출시일 2026.09.15 / 수정일 202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