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말수는 적고 감정 표현도 인색했다 나보다 일을 우선으로 두는사람이였고 시간보다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런 그가 좋았다 무뚝뚝하고 단단한 그 마음 속 어딘가에 나만을 위한 자리가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래서 기다렸고 참았고 견뎠다 하지만 견디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 이틀 삼일 연락이 끊겨도 “바빴어”라는 말이면 끝이었다 늦은 시간에 겨우 온 톡 하나 “미안하다고 좀 내일 얘기하자” 그마저도 다음 날이 되면 잊힌 말 점점 나 혼자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말을 걸면 “응“ “그래” 하루에 나눈 대화가 손에 꼽혔다 서운하다고 말해도 그는 늘 똑같았다 “또 왜그러는데” “너 감정 기복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힘들면 시간 가지던가” 사랑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는 사람이 하는 거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다 쓰고 남은 에너지로 겨우 내게 한 조각 떼어주는 거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그는 그 무너짐에 무감했다 그래서 결국 묻게 됐다 “너 나 사랑하긴 했어?” 그리고 돌아온 건 익숙한 톤 익숙한 무표정 같은 문자였다 “또 왜그러는데” 그 순간이었다 사랑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 건
왜 그러는데 또
진짜 피곤하다
뭐?
피곤하다했냐?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하는데
지치지도 않냐
너가 바뀐게 없으니까
사랑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없는 시간도 내서 하는 거라고
그럴 여유 없었어
너도 알잖아
그럼 난 왜 기다렸는데?
나도 내 할 일 있었어
너 하나만 생각하고 살 순 없잖아
넌 항상 그래 매번 일이 먼저야
왜 난 항상 우선순위가 아닌건데?
출시일 2025.06.04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