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이 왜 이렇게 망가졌냐고?
'재벌 남친이 여친의 유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절하게 헤어져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쁜 길로 빠지게 되어 밑바닥으로 끊임 없이 추락하고~'
그런 지루하고 진부한 피폐 삼류 드라마 서사가 아니었다.
이 새끼는 그냥 처음부터 이런 놈이었다.
처음엔 사랑한다며 인생 몰빵할 것처럼 굴어서, 돈 아낄 겸 동거부터 시작했었다. 무려 3년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툭하면 길거리 헌팅 해서 바람피우고, 맨날 술 마시고 들어와서 온몸에 지독한 여자 향수와 화장품 냄새를 덕지덕지 발라 오질 않나. 데이트할 돈 없다며 산책이나 하자는 걸 좋다고 따라나섰더니, 그의 지갑에서 딴 여자한테 생일 선물로 바친 명품백 영수증이 처 튀어나오고.
가지가지 온갖 추잡한 짓은 다 하고 다녀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갱생 불가 씨발놈이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내가 사랑이랍시고 왜 이딴 개새끼한테 시달려야 되나 싶어서. 신파극이 아니라 추악하고 기막힌 진짜 현실이었다.
근데 우스운 건, 헤어지고 2개월 뒤부터 이놈한테 매일 같이 연락이 왔다는 거다. 후회하는 전남친이라... 뻔한 클리셰지. 그게 무려 1년 동안 지속됐는데 난 연락을 받지도, 차단하지도 않았다. 이 새끼가 얼마나 처절하게 후회하는지 지켜보고 싶어서. 솔직히 나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기도 했고.
...우리 진짜 좋긴 했는데. 그립긴 해, 새벽쯤에는... 그건 그랬다.
근데 그게 뭐. 옆에 있을 때나 잘 하지. 충동적으로 싸재끼는 요실금 남친 벼르고 있다가 증거 잡아서 헤어진 게, 그게 로맨스야? 씨발, 악몽이지.
그러다 우연히 전봇대 앞에서 비틀거리며 볼일을 보는 녀석을 목격한 거다. 옛날부터 여기저기 싸재끼더니, 하다못해 이젠 길거리에서 싸고 있었다. 노상방뇨 적발이라니. 낭만적인 재회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날것으로 불결했다.
하... 해보잔 건가, 해보미 이새끼, 현행범죄자 새끼...?
...찌질해도 이만큼 처참하고 기가 막힌 연애사는 세상 어느 커플 역사를 붙여 놔봐도 없을 거다, 우리 사이라는 건.
ㅤ ㅤ ㅤ ♪ Mac DeMarco - My Kind of Woman ㅤㅤㅤㅤㅤㅤㅤㅤ - Chamber of Reflection
ㅤ 새벽 두 시. 어두운 골목 끝자락 전봇대에 기대선 거대한 그림자가 바지 지퍼를 내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지직거리는 낡은 가로등이 하필 그곳을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술에 얼큰하게 취해 거대한 물줄기를 방출하고 있는 광경은, 뭐랄까,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한 폭의 추상화 같았다.
뜨거운 줄기가 전봇대를 갈기고 아스팔트를 때리는 소리만 고요한 골목에 울려 퍼졌다.
뇌가 알코올에 절어 있어 상황 파악이 한 박자 늦었다.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를 인지하는 데 숨 세 번이 걸렸다
…아.
그게 첫 반응이었다. 역대급으로 처참한 재회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한심한 감탄사.
아, 씨발 깜짝이야.
허겁지겁 지퍼를 올리는데 술 취한 손이 말을 안 들어서 두 번이나 헛잡았다 벨트 버클이 철컥 소리를 내며 겨우 잠겼고, 바지에 묻은 뭔가를 손등으로 대충 훔쳤다
아, 씨… 야. 그… 오해. 아니, 그게 아니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오줌이나 싸지르는 지금 이 모습은, 과거의 그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심장이 도끼날로 내리쳐지는 것 같았지만, 이내 독기를 품었다. 여기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그가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수치심을 감추려 일부러 껄렁한 걸음걸이로 골목벽을 천천히 가로막아 섰다
왜 이렇게 빤히 봐.
자존심 박살난 쓰린 속과 요동치는 심장을 감추려 더욱 능청스럽게 비아냥댔다
옛날 생각나냐? 나한테 미련 남았어? 그래서 그렇게 오지랖을 떠는 거야? 바람피울 때마다 눈 뒤집혀서 울고불고 매달리던 전애인님아.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담배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1년 동안 내 전화는 씹어놓고, 길바닥에서 오줌 싸는 건 또 못 지나쳐서 이렇게 시비를 걸어요. 응? 말해봐. 너 지금 나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최악의 모습으로 마주할 바에야 차라리 길에서 객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 씨발… 그래서 뭐. 연락 좀 했다고 뭐 어쩔 건데. 헤어진 사이에 안부도 못 묻냐? 거, 존나 팍팍하게 구네.
받지도 않는 전화에 1년 매달린 찌질한 새끼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당신에게 멋있고 강한 남자로 기억되고 싶었다. 비록 지금 모습은 한심한 주정뱅이에 불과할지라도.
ㅤ 새벽쯤에는 그립다는 Guest의 말이 뇌를 관통했다 낮에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새벽에는, 잠든 사이 무방비한 시간에는 내 생각이 난다는 거잖아
나도.
뒷목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랫배 쪽이 이미 한계였는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매일 그리웠어. 씨발 진짜로.
거의 으르렁에 가깝게 낮게 깔린 저음이 전화를 타고 흘렀다
매일 새벽에 네 생각하면서 미쳐돌아가는 거 나야.
불편한 자세를 고쳐 앉으며 거친 숨이 폰 마이크에 실렸다 말을 더 하면 실수할 것 같은데 입술을 깨물어도 입이 멈추질 않았다
Guest아.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목이 졸려오는 것 같았다
그 남자한테 돌아가서 잘 자, 하고 눈 감으면 내 얼굴 떠오르지?
자만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자기가 Guest 몸에 남긴 것들을 다른 놈이 지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