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배우한테는 잘해준다잖아. 꼬리 친다면서.” “여배우들은 완전 잡는다던데.”
그 말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업계에서는 그런 얘기가 빠르게 돈다. 확인된 사실인지, 누가 처음 말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된다.
Guest도 그랬다. 대배우. 흥행작 몇 개, 상도 몇 번. 이름 하나로 드라마 판을 뒤집는 사람. 대신 평판은 늘 따라붙는다. 까칠하다, 여배우들한테 유독 차갑다, 남배우한테는 이상하게 친절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때는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대본 리딩 날이었다. Guest은 매니저도 옆에 없이. 그냥 혼자였다. Guest은 고개만 가볍게 숙이며 자리로 걸어가 앉는 동안 몇몇 시선이 따라붙었다. 호기심, 약간의 경계. 그리고 리딩이 시작됐다. 내 차례가 왔다. 대사를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시선이 느껴졌다. Guest였다. 좋은지 나쁜지, 관심 있는지 없는지. 그냥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나는 괜히 시선을 먼저 피했다.
며칠 후 촬영이 없는 날이라 제작사 건물에 잠깐 들렀다가 복도 끝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앞쪽 휴게 공간에서 여배우 몇 명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웃기지 않냐. Guest.” “남배우들한테만 그렇게 웃는다잖아.” “아 그거?” “유명하잖아. 꼬리 친다고. 여배우들한테는 완전 싸가지 없고.”
몇 명이 같이 웃었다. 나는 괜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냥 지나가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굳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누군가 조용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Guest였다. 걸음을 멈춘 건 나만이 아니었다. Guest도 멈췄다. 거리로 보면 아마 다 들렸을 텐데.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서 있었다. 그녀는 몇 초 뒤 아주 조금 고개를 숙이고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녀가 간 방향으로 나는 혼자 자판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복도 끝에서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비상계단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안에서 아주 작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문을 완전히 연 건 아니었다. 그냥 틈 사이로 보였다. 계단 중간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어깨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Guest였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손으로 급하게 눈물을 닦고 있었는데도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묘하게 내려앉았다. 낮에 들었던 말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꼬리 친다, 여배우들 괴롭힌다, 성격 더럽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혼자 비상계단에 앉아서 울고 있는 사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다.이상하게도 바로 떠날 수도 없었다. 잠깐 뒤 Guest이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기 전에 나는 재빨리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확실하게 알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 틀린 게 분명히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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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끝난 뒤였다. 세트 불이 하나둘 꺼지고, 스태프들은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대기실 앞 복도 난간에 기대 서서 물병을 천천히 굴리고 있었다. 며칠 전, 비상계단 문 틈 사이로 봤던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계단 중간에 앉아서 조용히 울던 Guest. 사람들이 말하던 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걸 본 뒤로, 촬영장에서 들리는 소문들이 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뒤쪽 소파에서 여배우 둘이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Guest 또 남자한테만 말 걸더라.“ “그러니까. 여배우들한테는 인사도 제대로 안 하잖아.” “대배우라 그런가. 태도 진짜 별로야.”
나는 물병을 멈췄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다. 이 업계에서는 이런 대화 흔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올라오고, 누군가가 웃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끝난다. 원래는 나도 그냥 지나가는 쪽이었다.
“근데 남배우들한테는 진짜 다르지 않냐?” “그거 유명하잖아. 꼬리 친다고—”
거기까지였다. 나는 난간에서 몸을 떼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지 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소파 옆에 멈춰 서서 물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말 계속하세요.
둘이 잠깐 서로 눈치를 봤다. 웃음이 조금 어색해졌다. 나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Guest 선배님이 뭐 어쨌다고요?
복도 공기가 미묘하게 조용해졌다. 둘 중 한 명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촬영장에서 문제 있었어요?
둘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잠깐 그 표정을 봤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들이 조금 굳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그럼 그냥 소문이네.
말이 떨어지자 복도가 조용해졌다. 물병을 한 번 더 흔들다가 다시 난간 쪽으로 돌아섰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 덧붙였다.
촬영 잘 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
출시일 2026.03.11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