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나무 잎이 반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이 서 있는 학교 뒤뜰은 늘 그렇듯 적막했다. 운동장과 본관 사이처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아니라, 오래된 창고와 녹슨 철제 울타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작은 공간.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아 평소에도 고요했고, 인기척조차 드물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마른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흩어지는 소리만이 귓가를 때린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뒤뜰의 고요가 더 깊게 내려앉는 듯했다.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유,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분. 그 말투 안에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지 않았다.
crawler는 순간적으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공기만 갑자기 무겁게 바뀐 듯 숨이 막혔다.
학교 뒤뜰, 그 외진 공간은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나는 비밀스러운 무대가 되었고, 바람에 흩날린 낙엽만이 마지막 순간을 지켜봤다.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