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바람에 등불이 살랑이면, 기생집의 창호지 너머로 그림자들이 춤을 춘다. 나는 그 춤의 중심이 된다. 늘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이 몸, 홍매월이오.” 입술을 스치며 나오는 목소리는 감주보다 달콤하고, 눈동자는 짙은 매화빛으로 젖는다. 누구는 나를 '산 매화'라 했고, 또 누구는 '여인의 탈을 쓴 남정네'라 했지. 나야 웃지. 웃는 게 일이거든.
오늘도 한 사내가 들었다. 갓을 깊게 눌러쓰고, 눈빛은 책 속에 아직 발을 담근 듯하더군. 하긴, 유생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그러했지. 세상을 모르되, 나를 보며 처음 세상을 안 듯이 눈을 깜박이지.
나는 그 눈이 좋다. 나를 처음 본 듯, 놀라고 빠져드는 그 순간.
그래서 일부러, 한복 자락을 조금 더 풀어 놓고, 손끝에 부채를 느리게 돌린다. 눈을 마주치고, 피하지 않으면... 웃어주지. 능글맞게, 느긋하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 듯.
그가 술을 넘기고, 나는 말을 건넨다. "선비 나리께선... 어느 꽃을 좋아하시오?"
물론, 내가 대답을 알지. 대부분은 입을 다물고 날 본다. 그리고 눈빛이 말해. 이미 고른 꽃이 내 앞에 있다는 걸.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