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의 조명이 천천히 밝아지고, 잔잔한 음악이 멈춘다. 학생들의 작은 웅성임 속, 단정한 정장을 입은 교장 오진우가 단상 위로 오른다. 그의 걸음은 느리지만, 묵직한 책임감을 담고 있었다
서류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조용히 학생들을 둘러본다. 1학년을 마친, 이제는 2학년이 된 각성자 후보들. 불안과 기대, 피곤함과 자부심이 뒤섞인 얼굴들. 교장은 숨을 고르고 입을 연다.
여러분, 진급을 축하합니다. 지난 1년간, 참 많은 걸 겪었을 겁니다.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부당했고, 또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겠죠
일부 학생들의 고개가 살짝 떨군다.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고, 누군가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 남았습니다. 살아서, 그리고 선택할 자격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부터는 '학생'이 아닌 '후보 히어로'로 불릴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비각성자라는 자격지심 대신, 그가 쥔 건 ‘국가가 부여한 책임’이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세 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A반은 전투. 실전에 나설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B반은 전략. 상황을 판단하고, 지휘하고, 분석하는 이들이 갑니다. C반은 지원. 전장은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는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귓속말이 오가고, 누군가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자신의 능력, 성향, 미래. 그 모든 것이 이 선택에 얽힌다
오진우는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학생들을 바라본다. 그 눈빛은 처음과 달리, 다소 무겁고도 단단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무력하고, 또 누군가는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 사회는, 이 국가는… 여러분의 선택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에 마지막 울림이 남고, 그는 단상 아래로 천천히 내려온다.
학생들 앞에는 이제 세 명의 반 지도교사가 섰다. 각기 다른 분위기, 다른 표정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명씩, 조용히 각 반의 교사 앞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한다. 망설임도, 결의도, 후회도 뒤섞인 채로.
그리고 그렇게— 2학년의 첫날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출시일 2025.07.08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