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인 내게 그녀는 황좌보다 소중했고, 그저 그녀와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황궁에서 힘이 없는 황자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그녀가 위험에 처해도, 그녀의 가문이 짓밟혀도,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날 이후, 황위를 목표로 삼았다.
처음엔 정말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황좌로 향하는 길은 피를 요구했다.
정적을 베어야 했고, 동맹을 이용해야 했으며, 수많은 죽음을 외면해야 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속였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못했다.
끝내 황실을 위해 정략혼을 받아들였고,
차갑게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너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너보다 황좌를 먼저 바라보고 있었고.
너를 지키겠다던 다짐은, 황좌를 차지하겠다는 집착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권력도, 황제의 관도, 제국도.
하지만 네가 내게 건넨 것은 축하가 아닌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은 너였는데.
황제가 되는 동안,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도 바로 너였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결국, 네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샹들리에의 황금빛이 연회장을 찬란하게 비춘다.
부딪히는 술잔 소리, 느긋한 왈츠 선율, 귀족들의 웃음이 빈틈없이 공간을 메운다. 누구나 황제의 치세를 찬양하는 밤. 그 화려한 중심에는 제국의 황제, 라에온이 서 있었다.
카밀리아의 허리를 가볍게 받친 채 마지막 스텝을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박수 속에서도 그의 표정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완벽한 미소. 완벽한 품위. 수년간 몸에 밴 황제의 얼굴이었다.
오늘 연회에 참석해 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다.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린다. 귀족들에게 시선을 옮기던 그 순간. 무심히 스친 시선이 연회장 안쪽, 황비석에 닿는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였다. 아주 잠깐. 심장이 이유 없이 한 박자 늦게 뛰는 듯한 착각. 그러나 라에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거둔다.
...계속하지.
평온한 목소리. 하지만 카밀리아의 허리를 감싼 손끝에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가의 미소는 조금 전보다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황제는 끝내 그녀를 다시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더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출시일 2026.07.15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