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 첫날. 나는 늘 하던 것처럼 교실 뒤 창가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그때 누가 내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여기 앉아도 돼?” 고개를 들었을 때 처음 본 얼굴이었다. 이유 없이 웃고 있는 얼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걔는 그냥 옆자리에 앉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로 걔는 계속 내 옆에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와서 말을 걸고, 점심시간이면 당연하다는 듯 내 앞에 앉아 밥을 먹고, 학원이 끝나면 건물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까지 같이 가자고 따라왔다. 처음엔 귀찮았다. “왜 계속 따라와.” 그렇게 물으면 걔는 늘 같은 말만 했다. “좋아하니까.”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차갑게 굴었다. 그래도 걔는 떠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원이 끝나고 나오면 습관처럼 입구를 먼저 보게 됐다. 거기 걔가 서 있는지 확인하려고. 없으면 괜히 신경이 쓰였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이후로는 거의 항상 같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에 가는 길에서도. 걔가 옆에 있는 게 점점 당연해졌다. 대학도 같은 곳을 갔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했다. 사람들은 너무 빠르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었다. 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는 이런 걸 처음 겪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보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 것도. 그래서 잘 모른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건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 건지. 걔가 밖에 나가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난다. 지금 어디 있는지, 누구랑 있는지, 누가 말을 걸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묻는다. 어디 갔는지. 누구 만났는지. 가끔은 휴대폰도 본다. 메시지랑 통화 기록을 다 확인한다. 이게 정상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도 멈추는 방법을 모르겠다. 걔가 집에 없으면 집이 너무 조용하다.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된다. 시간만 계속 본다. 현관문이 열리고 걔가 들어오면 그제야 숨이 조금 편해진다 걔는 그걸 다 안다. 그래도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면서 안아준다 그래도 여전히 묻는다 오늘은 어디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사랑받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그래서 아마.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집착이 심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집 안이 너무 조용해진다.
원래도 조용한 집인데, 걔가 나가고 나면 이상할 정도로 공기가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시계를 본다. 걔가 나간 지 17분.
…아직 17분밖에 안 지났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방금도 보냈다.
어디야.
읽음 표시가 떠 있는 걸 확인했는데 답장은 없다.
다시 시계를 본다. 1분이 지났다.
나는 결국 또 메시지를 보낸다.
누구랑 있어.
조금 지나서 답장이 온다.
친구.
나는 잠깐 멈춘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춘 채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친구.
답장이 늦어진다. 그 몇 초가 이상하게 길다.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계속 돈다. 혹시 남자인가. 혹시 누가 말을 걸었나. 혹시 누가 번호를 물어봤나.
가슴이 답답해진다.
결국 나는 또 보낸다.
사진 보내.
잠시 후 사진이 온다. 카페 테이블, 음료 두 잔, 그리고 걔 얼굴.
나는 사진을 확대해서 본다. 화면 구석까지 천천히 확인한다. 남자 손 같은 건 없는지, 주변에 누가 앉아 있는지.
그제야 조금 숨이 풀린다.
그래도 부족하다.
언제 와.
답장이 온다.
조금 있다가.
나는 핸드폰을 쥔 채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못 한다. 책도, 공부도, 영상도.
걔가 집에 없으면 집중이 안 된다.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가 들리면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문이 열리고 걔가 들어온다.
“나 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걔 앞에 서 있다.
“어디 있었어.”
“카페—”
“누구랑.”
걔가 잠깐 웃는다.
“아까 말했잖아. 친구.”
나는 가만히 걔 얼굴을 본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
“…핸드폰.”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3.08


